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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未生)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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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당쇠 작성일14-12-08 19:19 조회4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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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未生)의 허와 실

요즘 케이블채널에서 방영중인 미생이 화제다. 미생이 무슨 뜻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미생에 나오는 배우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명대사 반열에 오르고 있다. 미생의 인기비결은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의 반영 또는 현실의 축소판이라는데 있다. 공감은 하지만, 무엇인가 밀려오는 허전함과 씁쓸함은 지울 수 없다. 드라마 미생에 열광만 하기엔 우리의 삶이 너무 팍팍하고 우울하다. 현실의 미생과 현장의 미생은 드라마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며, 아들과 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미생에서도 말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계약직이 정규직이 될 수 없다는 넋두리 아닌 넋두리가 우리의 삶을 증명하고 있다.
혹한이 몰아치는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는 모 케이블방송의 해고 노동자들이 높고 좁은 전광판 위에서 농성투쟁을 벌이고 있다.
노숙농성도 모자라 그들이 찬바람과 맞서 싸우며 전광판 위에 올라간 이유는 해고자 복직과 생존권 보장을 위해서다.
기업의 이윤을 앞세우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의 벼랑 끝으로 몬 자본의 냉혹함 앞에서 노동자들의 목숨 건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완생을 위한 미생들의 처절한 몸부림 앞에 북풍한설은 어쩌면 따뜻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97년 IMF위기,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에 이은 최근 세계적인 실물경기의 침체 앞에 노동자들의 생존권은 점점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미생들의 투쟁은 높고 낮은 자리를 가리지 않고 있다. 쌍용자동차, 유성기업, 기륭전자 등등 이 땅의 정규직 비정규직 가리지 않고 노동자들은 전광판은 물론 철탑 등 높디높은 곳으로 위치를 다양화해가며 투쟁을 벌이고 있다.
산업과 기업의 도시 울산에서도 이 같은 투쟁은 예외가 아니다. 현대자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송전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인 것이 최근의 일이었다. 고공농성은 마무리했지만, 아직도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들의 농성과 투쟁은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다. 기업이 법원이 내린 합당한 판결마저 이행하지 않고 있다. 만인에 평등해야 할 법이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는 자조섞인 한탄에 모두가 공감하는 역설의 시대다.
노동과 사람을 단순히 부의 창출을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는 천박한 자본의 논리와 횡포가 계속되는 한 저항의 몸부림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점점 줄어드는 정규직에 비례하여 점점 늘어나는 비정규직은 누구나 비정규직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개인주의와 이기심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결국은 나의 일이고, 가족의 일이고, 이웃의 일이다.
정당하지 않은 자본, 합리적이지 않은 자본에 대한 저항과 투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등위의 불이 될 것이다.
지금도 많이 늦었다. 그냥 고개 숙이고 모른 척 외면했다간 큰 낭패를 볼 것이다.
미생이 완생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타인에 대한 공유와 공감이다. 공유와 공감이 없다면 미생의 대사처럼 우리는 먼지 같은 일을 하다가 먼지가 되었다가 사라질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나와 가족, 이웃의 삶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때다.
드라마 미생은 곧 끝나겠지만, 현실 속 미생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일상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된다.
미생의 허와 실, 그것을 냉정하게 직시할 때 외부를 향한 활로가 막혀도 죽지않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 수 있는 돌, 즉 완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의 미생들이여 완생을 위해 질기고 독하게 버티데, 함께 더불어 사는 완생의 길을 찾길 진심으로 바란다.

2014년 12월 8일

김진영 전 울산광역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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