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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직 왜 이리도 가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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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당쇠 작성일16-06-27 23:16 조회1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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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직 왜 이리도 가혹한가!!(울매)

우리 베이비부머세대들은 고통과 슬픔,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는 가축과 함께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약하자면, 사람의 삶이 아니라 가축의 삶이었다. 교육을 받고 문화를 누린다는 사치에 불과했다. 오로지 가족의 생계와 그것을 뛰어넘어 조국근대화라는 한줄기 빛을 보기 위해 앞뒤 재지 않고 뛰어왔다.
공업화와 산업화에 탑승하여 지난 30~40년간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지금은 억대연봉이니 귀족노동자니 하는 왜곡된 사실로 지탄을 받고 있지만, 노동자로서의 삶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감히 그렇게 함부로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낳아준 부모를 제대로 봉양할 생각조차 못했고, 여유도 없었다. 도회지로 나와 콘크리트 아파트 문화에 익숙한 자식들과 평생을 농촌의 삶을 살았던 부모들의 환경의 차이, 핵가족화로 인해 가족의 소중함은 점점 희미해졌고 진행형이다.
이렇듯 우리 세대는 부모 봉양도 제대로 못하는 호로자식, 불효자식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마음 한켠으로는 부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어깨위에 무거운 짐으로 놓여 있다.
그렇다고 내 자식을 믿고 살기에도 버겁다. 자식하나 잘 되길 바랄뿐, 자식에게 자신을 의탁할 것도 없고, 기대할 수도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정규직은 꿈이고, 비정규직은 현실인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자식들이 우리처럼 평온하게 결혼하고 임신해서 출산하길 바라는 것은 어쩌면 일장춘몽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높다. 맞벌이를 해도 빡빡한 현실을 탈피하기 쉽지 않은 여건에서 부모를 봉양해주길 기대하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저 우리처럼 자식을 낳아 키워보면서 부모의 소중함을 알아주길 희망할 뿐이다.
오직 나 자신과 부부 밖에 없는 외로운 세대가 베이비부머세대다. 부부만 쳐다보면서 인생 100세 시대를 살기에는 아직 너무 많은 시간과 갈 길이 멀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친구 사귈 시간도 없던 세대가 또한 우리 베이비부머세대다. 천직이라 믿고 있는 직장과 집만 오가며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고, 괘도를 벗어나면 죽는줄만 알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천직이라 여겼던 직장에서 조차 버림을 받게 되었다. 조선해양산업의 구조조정이 소박한 행복마저 앗아가고 있다. 대부분이 베이비부머세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과녁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처럼 베이비부머세대의 심장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고 있다. 고향을 떠나 가족을 뒤로한 채 일에 행복을 느끼고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한숨만 나올뿐이다.
자식이 대기업에 입사했다고 동네잔치까지 벌이며 으쓱해했던 부모의 잘난 자식들이 초라한 중장년신세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단두대 위에 올라선 사형수의 심정으로 하루 하루를 근근히 버티고 있는 현대중공업 직원들은 이제는 부끄러운 자식, 염치도 면목도 없는 부모가 되었다.
아무런 준비대 대비도 없이 쫒겨난 노동자들은 막연하게 ‘산 입에 거미줄 치겠냐’는 심정으로 거리로 내몰리기 직전에 놓여 있다.
온갖 정부의 혜택과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현대중공업기이에 우리는 국민기업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국민기업이 국민을 버리고, 국가도 국민을 버리는 나라에서 오직 믿을 것은 같은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 밖에 없다. 남의 집 일이 아니다.
해고가 곧 살인인 시대에 노동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조정은 당장 멈춰야 한다. 위기를 대비하여 쌓아놓은 수십조원의 사내유보금은 그냥 둔 채 오로지 사람자르기로 위기를 타개하려는 술책은 하책 중에서도 하책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했다. 당장 곳간을 풀어야 한다. 곳간의 곡식은 일부 대주주의 전유물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베이비부머세대는 오늘도 노동현장에서 가족들을 생각하며 숨죽이며 묵묵히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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