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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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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당쇠 작성일15-03-16 22:47 조회3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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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는 것

얼마 전, 부산지하철 안에서 겪은 경험이다. 시발역에서 지하철을 승차한 관계로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자리는 사람들로 다 채워졌다. 그리고 다음 역에서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끈 젊은 주부가 다가오기에 자리를 양보했다. 나보다 젊지만 아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힘겹게 몰고 온 어머니에게 자리양보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양보에 젊은 주부는 목적지까지 잠시나마 자리에 앉아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덕분에 나도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당연한 것에 대해 무신경하게 당연하게만 받아들이는 젊은 주부의 마음가짐에는 못내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자리양보에 대해 빈말이라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일언반구도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리를 양보받은 사람이 자리를 양보해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감사표시 정도하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당연하다는 것을 그냥 당연한 것으로만 받아들이면 당연함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은 격화될 수밖에 없다.
비단, 지하철을 비롯하여 대중교통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는 당연한 것에 대한 인식부족과 당연한 것에 대한 고마움 부족이 공존하고 있다.
가령 운전기사가 버스나 택시를 타는 승객들에게 ‘반갑습니다’라거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하는데도 아무런 댓구없이 그냥 지나치는 경우를 쉽사리 볼 수 있다.
손님에게 인사하는 대중교통의 기사들이 많지 않아 생경한 경험에서 비롯된 어색함도 있겠지만, 간단한 인사조차 나눌 여유와 배려가 없는 인색함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함이 오히려 세대간 갈등을 조장하는 경우도 최근 들어 종종 발생하고 있다. 한때 65세 이상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해 일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폐지를 거론한 배경에는 무조건적인 양보를 당연한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반감도 일부 작용했다.
노약자에게 양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당연함에도 최소한의 반대급부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호통치고 꾸지람만 할 것이 아니라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에 대해 적어도 감사의 표시정도는 서로를 존경하고 존중하는 예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극단적인 사례는 아닐지라도 일상 생활속에도 있다. 배달음식을 시키면서 제때 오지 않는 것을 타박하면서도 배달원을 비하하고, 인격을 무시하는 언행을 하는 사람도 주변에 적지 않다.
비용을 지불했으니 아무렇게나 상대해도 괜찮다는 천박한 우월감이 서로를 불신하고 증오하는 사회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잘못된 당연함은 또한, 소통을 막고, 불통을 증폭시키는 원인을 초래하고 있다.
불통의 시대라고 하지만, 소통의 도구는 더 많아졌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소통보다는 불통의 사회로 정의되고 있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적 감성이 필요한 곳에서도 디지털식 접근으로 그치는 것도 한 예이다. 간편하고 빠르다는 효율성을 내세워 상대방과 직접 만나거나 통화를 통해 전달해야 할 메시지도 문자나 이메일, 메신저 대화로 대신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당연한 것은 편리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고로움, 때론 번거로움, 그리고 마음을 담은 언행을 주고 받을때 더 가치있는 생명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번쯤 당연하다는 것을 되돌아봐야 할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2015년 3월 17일
김진영 전 울산광역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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