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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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동자 작성일03-02-18 17:32 조회993회 댓글0건본문
제네바 북미기본합의문의 파기자 미국을 고발한다
지난 1월10일 이북은 근거없는 ≪핵개발계획≫포기를 강박하며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의 전횡과 그 하수인인 국제원자력기구의 비열한 책동으로 국가 최고이익이 극도로 위협당하고 있는 엄중한 사태에 대처하여 핵확산금지조약(엔피티)에서 탈퇴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다.
이것은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존엄을 지키며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지극히 정당한 자위적 조치이며 주권국의 당당한 권리행사이다.
이북이 엔피티에서 탈퇴하게 된 것은 제네바북미기본합의문을 난폭하게 짓밟고 파기한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책임을 북에 전가하며 국제적인 대북고립압살공조체제를 수립해 보려고 발악하면서 ≪한≫반도정세를 일촉즉발의 전쟁국면에로 몰아가고 있다.
제네바북미기본합의문을 고의적으로 파기해 온 미국의 죄상을 폭로한다.
1. 북미기본합의문 채택과 미국의 정책
1994년 10월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미기본 합의문이 서명, 공표되었다.
이 기본합의문은 미국에 의해 야기된 ≪한≫반도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정표로서 북미간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역사적인 문건이었다.
때문에 합의문은 발표되자마자 온 겨레는 물론 전세계의 전폭적인 지지와 환영을 불러일으켰다.
① 미국의 흉심
그러나 미국은 애당초 제네바기본합의를 이행할 의사도, ≪한≫반도핵문제를 해결할 의향도 없었다.
미국이 제네바회담탁에 나온 것은 ≪북붕괴론≫에 기반한≪평화적 이행전략≫이 바야흐로 달성될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타산에서였다.
1994년은 이북에 있어서 최대의 시련기였다.
김일성주석의 서거와 연이은 자연재해, 외세의 악랄한 제재책동으로 인한 경제적 곤란으로 이북은 엄청난 시련과 난국을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당시 워싱턴의 대북정책 입안자들은 북의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단정했고 미국내에는 ≪3.3.3붕괴설≫(3일 아니면 3달, 아니면 3년안에 붕괴)이 나돌았다.
이같은 인식에 입각해 워싱턴은 북과의 대화와 ≪약속≫에 인색할 필요가 없었다.
≪워싱턴 포스트≫지 1994년 10월24일자는 미국이 제네바 북미기본합의에 동의한 것은 ≪합의사항을 다 지키기도 전에 북이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확신≫에서였다고 밝혔다.
미국은 처음부터 북미기본합의문을 이행해야 할 문서가 아니라 곧 백지화될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② ≪연착륙정책≫의 배합
북의 ≪조기붕괴≫를 예상하여 제네바합의에 도장을 찍은 미국은 고의적인 시간끌기-이른바 ≪연착륙정책≫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우선 경수로건설부터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
2003년까지 북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것은 그 어떤 ≪선사품≫이 아니라 미국이 국제사회 앞에서 공약한 법적 시한이며 의무였다.
그러나 미국은 경수로형을 설정하는 데서 아직 실체도 없고 가동실적도 없는 ≪한국형≫을 고집하면서 약속된 경수로 제공 계약체결 마감날짜로부터 무려 8개월간이나 시간을 지연시켰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케도)에 경수로제공권을 부여하도록 결정된 후에도 미국은 자금지출문제를 걸고 또다시 장애를 조성했다.
1998년 1월 8일 일본교도통신이 비난한 것처럼 ≪1994년 북과 핵합의를 체결하는 데서 주도적 역할을 논 미국은 경수로비용몫을 떠맡기를 거절≫해 경수로건설 총비용의 전부를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들이 떠안지 않으면 안되게 했다.
결국 경수로 건설은 북미기본합의문이 발표된지 3년 후인 1997년 8월 19일에야 겨우 착공식을 하게 되었고 2003년에 들어선 오늘 기초구덩이나 파놓은 상태에 머물고 있다.
2. 합의문파기의 신호탄
제네바 기본합의문 채택 이후 정세는 미국의 기대와는 상반되게 흘러갔다.
그동안 북은 붕괴되기는커녕 더욱 강해졌다.
미국 강경매파들은 ≪연착륙정책≫을 비난하며 행정부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진 미행정부는 합의문 이행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켜 온 책임을 모면하고 저들에 대한 세계적인 비난여론을 역전시키며 합법적인 파기구실을 마련하기 위해 반북모략 소동에 달라붙었다.
제1탄 - ≪금창리 지하핵시설≫의혹
미국은 1998년 8월17일 ≪뉴욕타임스≫에 ≪정보자료≫를 넘겨주어 ≪북이 비밀리에 건설하고 있는 금창리 지하시설이 핵무기개발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여론을 내돌렸다.
때를 같이 하여 미국의 강경론자들은 ≪북핵사찰≫여론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1998년 11월1일 당시 미국방장관은 ≪북이 지하핵시설 사찰을 수락하지 않으며 북미합의는 붕괴위기에 직면하게 된다≫고 공언했으며 미국무 부대변인도 11월9일 ≪북의 지하시설에 대한 사찰이 관철되지 않으면 북미 핵협정의 존립자체가 문제시될 것≫이라고 위협해 나섰다.
이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 1998년 11월22일자는 ≪제네바 핵동결합의를 좋아하지 않는 의회와 국방부, 정보기관 내 비판세력들은 최근의 지하핵시설 의혹을 북미 기본합의문을 깨고 평양과의 대결정책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고 폭로했다.
1999년 5월 거액을 지불하는 대가로 진행된 북의 금창리≪지하시설≫에 대한 ≪참관≫은 미국이 애써 마련한 합의문 파기의 제1탄이 송두리째 하늘로 날아나는 순간이었다.
제2탄 - ≪미사일위협≫설
금창리 의혹설이 빗나가자 미국은 제2탄으로 준비해 온 ≪미사일위협≫설을 요란스레 들고 나왔다.
1998년 초 미국방부 연례전략보고서를 통해 북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 라면서 미국은 그해 8월31일 북의 인공위성 ≪광명성1호≫발사를 계기로 북≪미사일위협≫소동을 더욱 광란적으로 벌여 놓았다.
미공화당 강경보수세력들은 북의 인공위성을 한사코 탄도미사일≪대포동 1호≫라고 밀어붙이면서 당장 미본토에 날아들 것처럼 여론을 확산시켰으며 ≪아시아의 안전보장을 뒤흔드는 심각한 사변≫이라고 걸고들며 일본을 부추겨 ≪케도의 비용분담동결≫을 떠들게 하는 한편 ≪중유공급중지법안≫까지 국회에 상정시켰다.
또한 ≪북이 대포동 2호개발을 끝내고 3호개발에 착수했다≫고 떠들면서 ≪사거리는 6.000킬로미터에서 1,500킬로미터에 이르고 있다≫,≪발사대는 화대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북부국경지대에도 건설되고 있다≫는 허위정보를 유포시켜 ≪미사일문제≫를 눈덩이처럼 굴려가며 극대화해 나갔다.
미공화당매파들은 ≪미사일위협≫론을 고창하며 1999년 9월 북미본합의에 따르는 미행정부의 일부 ≪대북제재 완화조치≫를 맹렬히 비난하다 못해 그 반대성명이란 것을 통해 합의문이 ≪다음번 대통령 하에서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고 폭언함으로써 제네바합의문 파기기도를 공공연히 드러내놓았다.
3. 부시행정부의 파기책동
이미 ≪한국일보≫ 1996년 8월28일자는 ≪북미제네바합의의 파기, 경수로건설지원 저지, 이것이 미공화당의 입장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2001년 호전적인 미공화당 부시행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미국의 제네바합의파기는 더욱 노골화되고 가속화되었다.
① 파기의 본격화
처음부터 제네바합의문 자체를 반대해 온 부시 집행부 속에서는 집권하자마자 ≪경수로에서는 흑연감속로보다 몇배 더 많은 플루토늄이 추출될 수 있다≫느니, ≪2003년은 완공목표이지 법적시한이 아니다≫느니, ≪당연히 중단해야 할 핵시설 동결의 대가로 경수로를 건설해 준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느니 하는 궤변들이 연이어 튀어나왔고 나중에는 ≪화력발전소 대체≫설까지 울려나왔다.
부시행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미사일위협≫,≪대량살상무기위협≫론에 ≪재래식 상용무기위협론≫까지 집요하게 확산시키면서 2000년 10월에 채택한 북미공동코뮈니케까지 차던지고 중단과 재개를 거듭하며 근근히 이어오던 북미회담마저 일방적으로 결렬시켰다.
심지어 부시정권은 지난해 초 북을 ≪악의 축≫으로, ≪핵선제공격대상국≫으로 지정하고 대북공격용 소형전술핵무기 개발을 지시했다.
이것은 북에 대한 노골적인 선전포고로서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핵무기로 위협하지도 않는다는 공식담보를 북에 제공하기로 한 제네바 기본합의문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파기책동이었다.
또한 기본합의문 제4조와 합의문에 따르는 비공개양해록 7항에 따라 ≪터빈과 발전기를 포함한 비핵부분품들의 납입≫이 완전히 실현된 다음에 핵사찰을 받게 되어있으나 지난해 8월 경수로 기초콘크리트 타입시작과 함께 이북이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경수로지원을 할 수 없다는 억지주장을 들고 나옴으로써 미국이 합의문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한번 온 세상에 드러냈다.
② 파기의 최종탄 - ≪농축우라늄≫설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수뇌평양상봉과 6.15공동선언발표 이후 남북 사이에는 ≪우리 민족끼리≫ 통일을 촉진해 나가는 민족사의 새 시대가 펼쳐졌다.
과반세기에 걸친 분열의 장벽이 무너져 내리고 당국과 민간급의 접촉과 교류, 대화가 활성화되었으며 끊어진 남북철도 및 도로연결사업이 세인의 찬탄 속에 시작되었다.
북러, 북중관계가 공고해지고 북일관계도 지난해 9월 고이즈미의 평양방문을 계기로 새로운 개선국면에 진입했다.
이북을 고립압살시켜 전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물거품이 되고 오히려 미국은 역포위당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게다가 이북에 확약한 경수로제공기한인 2003년은 바야흐로 눈 앞에 박두해 미국은 국제적 협정위반자로서 피고석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에 당혹해진 부시행정부가 궁여지책으로 꾸며낸 것이 바로 북의 ≪농축우라늄 핵계획≫설이다.
이것은 제네바합의문 파기의 책임을 북에 넘겨씌워 합법적인 완전파기의 구실을 마련하며 국제적 고립의 위기에서 탈피하기 위한 이른바 일석이조의 효과를 겨냥한 최종탄이었다.
미국이 1990년대에 날조해 써먹은 황당무게한 ≪플루토늄핵계획≫설이 10여년이 지난 후 ≪농축우라늄 핵계획≫설로 둔갑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7월부터 ≪한국≫과 일본에 북의 ≪농축우라늄 핵의혹≫설을 유포시켜 남북, 북일관계개선에 제동을 걸었으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10월초 켈리를 평양에 보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북이 제네바기본합의문을 위반했다고 거꾸로 걸고들었으며 10월 17일에는 북이 ≪농축우라늄 핵개발을 인정했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14일에는 제네바합의 가운데서 유일하게 그 이행이 간신히 유지되어 오던 중유제공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12월부터 실제적으로 대북중유납입을 중단했다.
이로서 제네바북미 기본합의문은 8년만에 미국에 의해 백지화되고 일방적으로 완전파기되었다.
제네바 북미기본합의문파기라는 1차적 목적을 달성한 미국은 북미불가침조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국내외 여론을 외면하고 ≪선핵포기 후대화≫라는 강도적 요구로 일관하면서 하수인인 미국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국제원자력기구를 사주해 북≪핵문제≫를 국제화하는 데로 나갔다.
미국은 오늘까지도 북의 ≪핵개발≫에 대한 신빙성있는 자료를 국제사회 앞에 제시하지 못하고 억지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현실은 미국의 제2의 북≪핵소동≫이 바로 제네바합의문을 완전파기하고 반북고립압살책동을 노골화하기 위한 모략이었다는 것을 똑똑히 입증해주고 있다.
미국은 그 어떤 간교한 술책으로서도 제네바합의를 파기한 진범인으로서의 정체를 절대로 가릴 수 없으며 이북을 엔피티탈퇴로 떠민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부시행정부는 세계여론을 우롱하면서 대북압살을 위한 국제적인 공조체제 수립책동에 집착하는 어리석고 무모한 짓을 걷어치워야 하며 불가침조약을 체결 즉각 응해야 한다.
우리 민중은 ≪핵문제≫를 빌미로 남북관계개선에 제동을 걸고 민족멸살을 초래할 북침핵전쟁책동에 광분하고 있는 미국의 행위를 추호도 용납치 않을 것이며 ≪민족공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전민족적인 반미반전결사항전으로 단호히 분쇄해 버릴 것이다.
지난 1월10일 이북은 근거없는 ≪핵개발계획≫포기를 강박하며 힘으로 압살하려는 미국의 전횡과 그 하수인인 국제원자력기구의 비열한 책동으로 국가 최고이익이 극도로 위협당하고 있는 엄중한 사태에 대처하여 핵확산금지조약(엔피티)에서 탈퇴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다.
이것은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존엄을 지키며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지극히 정당한 자위적 조치이며 주권국의 당당한 권리행사이다.
이북이 엔피티에서 탈퇴하게 된 것은 제네바북미기본합의문을 난폭하게 짓밟고 파기한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책임을 북에 전가하며 국제적인 대북고립압살공조체제를 수립해 보려고 발악하면서 ≪한≫반도정세를 일촉즉발의 전쟁국면에로 몰아가고 있다.
제네바북미기본합의문을 고의적으로 파기해 온 미국의 죄상을 폭로한다.
1. 북미기본합의문 채택과 미국의 정책
1994년 10월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북미기본 합의문이 서명, 공표되었다.
이 기본합의문은 미국에 의해 야기된 ≪한≫반도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정표로서 북미간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역사적인 문건이었다.
때문에 합의문은 발표되자마자 온 겨레는 물론 전세계의 전폭적인 지지와 환영을 불러일으켰다.
① 미국의 흉심
그러나 미국은 애당초 제네바기본합의를 이행할 의사도, ≪한≫반도핵문제를 해결할 의향도 없었다.
미국이 제네바회담탁에 나온 것은 ≪북붕괴론≫에 기반한≪평화적 이행전략≫이 바야흐로 달성될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타산에서였다.
1994년은 이북에 있어서 최대의 시련기였다.
김일성주석의 서거와 연이은 자연재해, 외세의 악랄한 제재책동으로 인한 경제적 곤란으로 이북은 엄청난 시련과 난국을 겪지 않으면 안되었다.
당시 워싱턴의 대북정책 입안자들은 북의 ≪붕괴≫는 ≪시간문제≫라고 단정했고 미국내에는 ≪3.3.3붕괴설≫(3일 아니면 3달, 아니면 3년안에 붕괴)이 나돌았다.
이같은 인식에 입각해 워싱턴은 북과의 대화와 ≪약속≫에 인색할 필요가 없었다.
≪워싱턴 포스트≫지 1994년 10월24일자는 미국이 제네바 북미기본합의에 동의한 것은 ≪합의사항을 다 지키기도 전에 북이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확신≫에서였다고 밝혔다.
미국은 처음부터 북미기본합의문을 이행해야 할 문서가 아니라 곧 백지화될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② ≪연착륙정책≫의 배합
북의 ≪조기붕괴≫를 예상하여 제네바합의에 도장을 찍은 미국은 고의적인 시간끌기-이른바 ≪연착륙정책≫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우선 경수로건설부터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
2003년까지 북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것은 그 어떤 ≪선사품≫이 아니라 미국이 국제사회 앞에서 공약한 법적 시한이며 의무였다.
그러나 미국은 경수로형을 설정하는 데서 아직 실체도 없고 가동실적도 없는 ≪한국형≫을 고집하면서 약속된 경수로 제공 계약체결 마감날짜로부터 무려 8개월간이나 시간을 지연시켰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케도)에 경수로제공권을 부여하도록 결정된 후에도 미국은 자금지출문제를 걸고 또다시 장애를 조성했다.
1998년 1월 8일 일본교도통신이 비난한 것처럼 ≪1994년 북과 핵합의를 체결하는 데서 주도적 역할을 논 미국은 경수로비용몫을 떠맡기를 거절≫해 경수로건설 총비용의 전부를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맹국들이 떠안지 않으면 안되게 했다.
결국 경수로 건설은 북미기본합의문이 발표된지 3년 후인 1997년 8월 19일에야 겨우 착공식을 하게 되었고 2003년에 들어선 오늘 기초구덩이나 파놓은 상태에 머물고 있다.
2. 합의문파기의 신호탄
제네바 기본합의문 채택 이후 정세는 미국의 기대와는 상반되게 흘러갔다.
그동안 북은 붕괴되기는커녕 더욱 강해졌다.
미국 강경매파들은 ≪연착륙정책≫을 비난하며 행정부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진 미행정부는 합의문 이행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켜 온 책임을 모면하고 저들에 대한 세계적인 비난여론을 역전시키며 합법적인 파기구실을 마련하기 위해 반북모략 소동에 달라붙었다.
제1탄 - ≪금창리 지하핵시설≫의혹
미국은 1998년 8월17일 ≪뉴욕타임스≫에 ≪정보자료≫를 넘겨주어 ≪북이 비밀리에 건설하고 있는 금창리 지하시설이 핵무기개발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여론을 내돌렸다.
때를 같이 하여 미국의 강경론자들은 ≪북핵사찰≫여론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1998년 11월1일 당시 미국방장관은 ≪북이 지하핵시설 사찰을 수락하지 않으며 북미합의는 붕괴위기에 직면하게 된다≫고 공언했으며 미국무 부대변인도 11월9일 ≪북의 지하시설에 대한 사찰이 관철되지 않으면 북미 핵협정의 존립자체가 문제시될 것≫이라고 위협해 나섰다.
이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 1998년 11월22일자는 ≪제네바 핵동결합의를 좋아하지 않는 의회와 국방부, 정보기관 내 비판세력들은 최근의 지하핵시설 의혹을 북미 기본합의문을 깨고 평양과의 대결정책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고 폭로했다.
1999년 5월 거액을 지불하는 대가로 진행된 북의 금창리≪지하시설≫에 대한 ≪참관≫은 미국이 애써 마련한 합의문 파기의 제1탄이 송두리째 하늘로 날아나는 순간이었다.
제2탄 - ≪미사일위협≫설
금창리 의혹설이 빗나가자 미국은 제2탄으로 준비해 온 ≪미사일위협≫설을 요란스레 들고 나왔다.
1998년 초 미국방부 연례전략보고서를 통해 북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 라면서 미국은 그해 8월31일 북의 인공위성 ≪광명성1호≫발사를 계기로 북≪미사일위협≫소동을 더욱 광란적으로 벌여 놓았다.
미공화당 강경보수세력들은 북의 인공위성을 한사코 탄도미사일≪대포동 1호≫라고 밀어붙이면서 당장 미본토에 날아들 것처럼 여론을 확산시켰으며 ≪아시아의 안전보장을 뒤흔드는 심각한 사변≫이라고 걸고들며 일본을 부추겨 ≪케도의 비용분담동결≫을 떠들게 하는 한편 ≪중유공급중지법안≫까지 국회에 상정시켰다.
또한 ≪북이 대포동 2호개발을 끝내고 3호개발에 착수했다≫고 떠들면서 ≪사거리는 6.000킬로미터에서 1,500킬로미터에 이르고 있다≫,≪발사대는 화대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북부국경지대에도 건설되고 있다≫는 허위정보를 유포시켜 ≪미사일문제≫를 눈덩이처럼 굴려가며 극대화해 나갔다.
미공화당매파들은 ≪미사일위협≫론을 고창하며 1999년 9월 북미본합의에 따르는 미행정부의 일부 ≪대북제재 완화조치≫를 맹렬히 비난하다 못해 그 반대성명이란 것을 통해 합의문이 ≪다음번 대통령 하에서 유지되지 못할 것≫이라고 폭언함으로써 제네바합의문 파기기도를 공공연히 드러내놓았다.
3. 부시행정부의 파기책동
이미 ≪한국일보≫ 1996년 8월28일자는 ≪북미제네바합의의 파기, 경수로건설지원 저지, 이것이 미공화당의 입장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2001년 호전적인 미공화당 부시행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미국의 제네바합의파기는 더욱 노골화되고 가속화되었다.
① 파기의 본격화
처음부터 제네바합의문 자체를 반대해 온 부시 집행부 속에서는 집권하자마자 ≪경수로에서는 흑연감속로보다 몇배 더 많은 플루토늄이 추출될 수 있다≫느니, ≪2003년은 완공목표이지 법적시한이 아니다≫느니, ≪당연히 중단해야 할 핵시설 동결의 대가로 경수로를 건설해 준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느니 하는 궤변들이 연이어 튀어나왔고 나중에는 ≪화력발전소 대체≫설까지 울려나왔다.
부시행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미사일위협≫,≪대량살상무기위협≫론에 ≪재래식 상용무기위협론≫까지 집요하게 확산시키면서 2000년 10월에 채택한 북미공동코뮈니케까지 차던지고 중단과 재개를 거듭하며 근근히 이어오던 북미회담마저 일방적으로 결렬시켰다.
심지어 부시정권은 지난해 초 북을 ≪악의 축≫으로, ≪핵선제공격대상국≫으로 지정하고 대북공격용 소형전술핵무기 개발을 지시했다.
이것은 북에 대한 노골적인 선전포고로서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핵무기로 위협하지도 않는다는 공식담보를 북에 제공하기로 한 제네바 기본합의문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파기책동이었다.
또한 기본합의문 제4조와 합의문에 따르는 비공개양해록 7항에 따라 ≪터빈과 발전기를 포함한 비핵부분품들의 납입≫이 완전히 실현된 다음에 핵사찰을 받게 되어있으나 지난해 8월 경수로 기초콘크리트 타입시작과 함께 이북이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경수로지원을 할 수 없다는 억지주장을 들고 나옴으로써 미국이 합의문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한번 온 세상에 드러냈다.
② 파기의 최종탄 - ≪농축우라늄≫설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수뇌평양상봉과 6.15공동선언발표 이후 남북 사이에는 ≪우리 민족끼리≫ 통일을 촉진해 나가는 민족사의 새 시대가 펼쳐졌다.
과반세기에 걸친 분열의 장벽이 무너져 내리고 당국과 민간급의 접촉과 교류, 대화가 활성화되었으며 끊어진 남북철도 및 도로연결사업이 세인의 찬탄 속에 시작되었다.
북러, 북중관계가 공고해지고 북일관계도 지난해 9월 고이즈미의 평양방문을 계기로 새로운 개선국면에 진입했다.
이북을 고립압살시켜 전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물거품이 되고 오히려 미국은 역포위당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게다가 이북에 확약한 경수로제공기한인 2003년은 바야흐로 눈 앞에 박두해 미국은 국제적 협정위반자로서 피고석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이에 당혹해진 부시행정부가 궁여지책으로 꾸며낸 것이 바로 북의 ≪농축우라늄 핵계획≫설이다.
이것은 제네바합의문 파기의 책임을 북에 넘겨씌워 합법적인 완전파기의 구실을 마련하며 국제적 고립의 위기에서 탈피하기 위한 이른바 일석이조의 효과를 겨냥한 최종탄이었다.
미국이 1990년대에 날조해 써먹은 황당무게한 ≪플루토늄핵계획≫설이 10여년이 지난 후 ≪농축우라늄 핵계획≫설로 둔갑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7월부터 ≪한국≫과 일본에 북의 ≪농축우라늄 핵의혹≫설을 유포시켜 남북, 북일관계개선에 제동을 걸었으나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자 10월초 켈리를 평양에 보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북이 제네바기본합의문을 위반했다고 거꾸로 걸고들었으며 10월 17일에는 북이 ≪농축우라늄 핵개발을 인정했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14일에는 제네바합의 가운데서 유일하게 그 이행이 간신히 유지되어 오던 중유제공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12월부터 실제적으로 대북중유납입을 중단했다.
이로서 제네바북미 기본합의문은 8년만에 미국에 의해 백지화되고 일방적으로 완전파기되었다.
제네바 북미기본합의문파기라는 1차적 목적을 달성한 미국은 북미불가침조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국내외 여론을 외면하고 ≪선핵포기 후대화≫라는 강도적 요구로 일관하면서 하수인인 미국 자신이 최대주주로 있는 국제원자력기구를 사주해 북≪핵문제≫를 국제화하는 데로 나갔다.
미국은 오늘까지도 북의 ≪핵개발≫에 대한 신빙성있는 자료를 국제사회 앞에 제시하지 못하고 억지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현실은 미국의 제2의 북≪핵소동≫이 바로 제네바합의문을 완전파기하고 반북고립압살책동을 노골화하기 위한 모략이었다는 것을 똑똑히 입증해주고 있다.
미국은 그 어떤 간교한 술책으로서도 제네바합의를 파기한 진범인으로서의 정체를 절대로 가릴 수 없으며 이북을 엔피티탈퇴로 떠민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부시행정부는 세계여론을 우롱하면서 대북압살을 위한 국제적인 공조체제 수립책동에 집착하는 어리석고 무모한 짓을 걷어치워야 하며 불가침조약을 체결 즉각 응해야 한다.
우리 민중은 ≪핵문제≫를 빌미로 남북관계개선에 제동을 걸고 민족멸살을 초래할 북침핵전쟁책동에 광분하고 있는 미국의 행위를 추호도 용납치 않을 것이며 ≪민족공조≫의 기치를 높이 들고 전민족적인 반미반전결사항전으로 단호히 분쇄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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