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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반미반전 작성일03-04-16 20:05 조회4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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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한반도 통일정세의 향방(4.12)

(민경우 통일연대 사무처장)

1.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역사적 지위

1) 미국의 반확산전략의 연장선
2) 이라크 침공의 양상과 결과
3) 소결

2. 한반도 정세의 추이
1) 이라크 침공의 추이와 한반도 정세의 향방
2) 불가침조약의 정치적 함의

글을 맺으며
보론 : 사담후세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1.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역사적 지위

1) 미국의 반확산전략의 연장선

냉전 시기 미국의 세계 전략은 대사회주의 전략을 기본으로 짜여져 있었다.
90년대 초반 소련 및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면서 미국의 세계 전략은 크게 두가지로 구성된다.
하나는 러시아, 유럽, 일본, 중국 등 강대국들이 미국의 이해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부상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국지적 차원의 강국 또는 반제성향의 국가들을 제압하는 것이다.
러시아, 유럽 등 강대국들이 90년대 전 기간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경향은 없었다.(유로화 출범 정도가 가장 의미있는 도전일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세계전략은 국지적 군사강국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통제를 중심으로 구체화되었다.
90년대 초반 미국의 이러한 세계전략, 국지적 군사강국을 외교적(외교적 방법을 선호하는 것을 비확산, 군사적 방법과 선제공격을 포함하는 개념이 반확산이다)으로 제압하겠다는 발상이 구체화되었던 사건이 91년 걸프전과 90년대 초반 한반도 전쟁위기이다.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와 소련 중심의 사회주의 체제가 양립하고 있는 조건에서는 미소의 세력 범위에 대한 양자간의 암묵적 동의가 전제되어 있었다. 이러한 역학 구조 하에서는 91년 걸프전과 같이 미국 주도의 연합군이 이라크 정도의 중간 규모의 군사 강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90년대 중반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 아래서 미국의 비확산 전략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색채를 띄었다.
이라크의 경우 대량 학살이라고 할만한 수준의 경제 제재를 가하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지상전을 불사하며 바그다드를 점령하겠다는 수준은 아니었고 이북에 대해서는 연착륙 정책과 평화공존 정책 등 비교적 연성 기조의 정책을 채택하였다.

미국의 비확산, 반확산 전략이 극단적인 양상으로 발전한 것은 2001년 부시행정부의 출현과 9.11 테러가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부시행정부 출범으로 반확산전략은 공식 정책으로 채택되어 실행 단계로 접어 들었고 9.11 테러는 이를 위한 빌미가 되었다.

2001년 5월9일 한국을 방문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부시행정부의 세계전략을 전략 핵무기 감축, MD, 비확산, 반확산 등 4가지로 요약하였고, 이러한 전략 기조는 2002년 1월8일 핵태세 보고서, 1월29일 악의 축 발언을 거쳐 2002년 9월 국가안보전략으로 공식화되었다.
미국의 반확산전략은 첫째. 이른바 불량국가를 선제 공격을 통해서라도 제압하며 둘째 선제 공격을 담보할 군사무기를 개발하고(지하벙커 파괴용 소형 핵 폭탄 개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셋째로 전방위적인 압박을 통해 불량국가의 정치질서를 바꾸어 버리겠다는 정책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의 반확산전략은 9.11 테러 이후 본격화되었다.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겨냥한 아프칸 전쟁 이후 미국은 2002년을 전쟁의 해가 될 것을 선언하면서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 조직에 대한 전 세계적인 범위의 진압에 나서는 한편 중동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이라크 문제에 대한 강경 기조의 전략을 구체화하고 이북에 대한 압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2002년 3월 하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대한 전격적인 군사 공격을 감행하였고 2002년 하반기에는 UN 안보리에서 이라크 침공을 둘러 싼 외교전, 북미 공방 등이 진행되었다.

2003년 이라크 침공은 90년대 이후 미국의 반확산전략의 연장선에서 진행되었다.
충격적인 것은 첫째. 러시아.독일.프랑스 등 강대국의 이해 관계마저 부정하는 극단적인 일방주의 둘째. 외과수술식 폭격을 넘어 보병을 동원한 지상전을 감행한 것(근대 이전의 점령군대를 연상케 한다) 셋째. 대량살상무기의 유무와 관계없이 정치질서를 재편하겠다는 정책(반확산전략은 대량살상무기를 군사적 수단을 통해서라도 제압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이라크 침공은 대량살상무기가 없었고 이후 시리아.이란 등으로 상황이 발전할 것이라는 점에서 반확산전략보다도 호전적이다)

이상을 요약한다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탈냉전 이후 전 세계적인 범위의 유일 패권을 차지하려는 미국의 계단식 강성정책의 연장선에서 가깝게는 부시 행정부 출범과 9.11 이후 본격화된 반확산전략의 연장선에서 이라크가 먹이감으로 선택된 것이다.


2) 이라크 침공의 양상과 결과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91년 1차 걸프전, 90년대 경제 제재,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 세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91년 1차 걸프전은 사담 후세인이라는 야심가가 소련 붕괴 이후의 국제 질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쿠웨이트에 침공했다가 이를 기화로 국제 질서를 전면적으로 재편하려는 미국의 치밀한 외교전과 압도적인 군사력에 의해 궤멸된 전쟁이다.(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기 때문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것은 그저 명분일 뿐이다)

90년대 전 기간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경제 제재를 강행했다. 1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진행된 미국의 경제 제재는 연필, 의약품, 수돗물 정화용 약품, 냉동용 화물차, 분유 등을 포함한 것으로 이라크 경제 전반을 구조적으로 파괴하였다.
이로 인해 200만에 달하는 민간인 특히 5세 미만의 어린이 50만명이 사망하였다.
90년대 미국이 진행한 경제 제재는 첫째. 사담 후세인 퇴진을 목표로 이라크 국민을 상대로 벌인 일종의 전쟁이었고, 둘째. 경제 제재에 의한 피해 규모와 양상이 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로 사실상의 조직적인 학살극이었다.

경제 제재라는 형태의 2차 전쟁은 결과는 다음의 두가지 상반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첫째. 미국은 학살에 가까운 경제봉쇄에도 불구하고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는 데 실패하였고 역설적으로 이라크 민중의 반미 정서를 확대하였다. 둘째는 이라크의 군사.경제력이 구조적으로 파괴되었다. 2차 경제 제재의 이러한 결과가 2003년 3월의 전쟁의 양상을 좌우한 것으로 보인다. 압도적인 군사력의 차이에 의해 이라크는 불과 3주만에 사실상 붕괴하고 말았다. 반면 이라크는 게릴라 전쟁과 반미 정서를 통해 이라크를 안정적으로 접수하려는 미국의 기도를 일정 부분 좌절시켰다.

향후 전황은 첫째. 이라크 군대의 조직적이고 규모있는 대응은 사실상 좌절되었다. 둘째. 이라크 내부의 분열과 내부 봉기를 통해 이라크를 접수하지 못함으로 인해 미국의 이라크 및 중동 정책은 중대한 난관에 봉착하였다. 90년대 전 기간 진행된 미국의 이라크 학살극은 결국 바그다드를 점령하는 중세기적 보병전, 점령전으로 귀결되었지만 이라크는 미국으로부터 해방자, 자유의 투사라는 이미지를 벗겨 내고 침략자로서의 본질을 드러내었다.


3) 소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미국의 반확산전략의 연장선에서 진행된 전쟁으로 러시아.독일.프랑스 등 전통적인 강대국의 이해 관계도 부정하는 극단적인 일방주의, 중동의 정치질서를 인위적으로 재편하고 이를 보병전, 특수전, 시가전을 통해서라도 관철하겠다는 상상을 초월하는 야만성의 극단적인 표현이었다.

반면 미국의 일방주의가 극단화되면서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반전평화운동이 성장하였고 강대국간의 이해 대립이 드러난 점, 중동 전역으로 반미 운동이 확산된 점은 향후 반제 운동의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2. 한반도 정세의 추이

1) 이라크 침공의 추이와 한반도 정세의 향방

미국의 이라크 침공 결과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전략이 성공한 반면 전 세계적인 규모의 반미반전평화 운동의 성장으로 미국의 패권주의를 일정하게 견제하였다.
만약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UN 안보리의 결의를 통해 진행되고 이라크 민중의 저항이 없었다면 미국의 이북에 대한 압박은 대단히 노골적이고 군사적인 양상을 띄었을 것이다.
반면 이라크군대가 완강하게 대응하여 전쟁을 주도한 강경파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었다면 정국의 주도권이 다른 정파로 이동하면서 북미 공방은 전격적으로 해결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현재 상황으로 본다면 미국은 이북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반면 노골적인 위협을 가할만한 입지를 확보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객관적으로 미국은 상당 기간 이라크에 발이 묶여 있을 수밖에 없다.
북미 공방에 대한 이북의 입장은 간명하다.
필자가 보기에 이북이 불가침 조약 이하에서 양보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북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량살상무기가 없는 나라를 선제 공격하는 판에 평화에 대한 제도적 보장장치가 없는 한 어떠한 타협도 무의미한 것이다.
반면 미국은 일단 이라크 침공을 마무리하는 데 주력하면서 이북을 다자간 협상의 틀로 끌어내는 데 주력할 것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다자간 협상 틀이란 중러일 등을 끌어 들여 불가침조약 요구를 희석화하고 이북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려는 전형적인 외교적 수법으로 사실상 대화를 가장한 지연전술이다.

양자 회담과 불가침 조약을 요구하는 이북과 다자간 협상을 통해 상황을 호도하려는 미국의 요구가 맞붙는 가운데 중국이 북미 양자대화에서 다자간 대화 입장으로 선회하였고, 노무현 정부는 현상 동결(재처리 금지, 미사일 발사 금지), 다자간 대화, 에너지 협력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안을 정리하였다.
중국의 입장은 자국의 경제안정을 위해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조속히 해결하자는 입장으로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인정하는 범위에서 상황을 조속히 마무리하려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적 정책의 산물이다.
한편 노무현 정부의 구상은 실현 불가능한 제안으로 미국의 대화지연 요구를 합법화해 주고 있다.(주1)

이라크 침공이 대체로 미국의 주도 아래 마무리되면서 미국의 입장이 강화되었고 이 여파가 중국의 입장 선회와 노무현 정부의 친미적 행보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공은 이북으로 넘어 왔다.
이북은 미국의 공세의 여지를 차단하면서 지루한 외교적 공방을 진행할 수도 있고 조기에 쟁점을 선명히 하기 위한 정치적 공세로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의 문제일 뿐 불가침 조약과 같은 공고한 평화체제를 통해 상황을 마무리하려는 이북과 동북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입장이 충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북미 공방의 결과는 다음의 세가지이다.
첫째는 전쟁이다.
필자가 보기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과 이라크는 군사력에 근본적인 차이가 날 뿐 아니라(주2) 주변 정치 지형이 다르다. 미국이 세계대전을 각오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 전쟁은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두 번째는 불가침조약의 체결이다. 불가침조약은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질서의 대전환을 가져올 것이다.
셋째는 최근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는 파키스탄 모델이다.(주3)

필자가 보기에 상황은 두 번째와 세 번째에서 마무리될 것이다.
두 번째가 이상적인 해결책이고 세 번째 해결책은 상황의 종결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국면으로의 이동이라고 볼 수 있다.


2) 불가침조약의 정치적 함의

① 불가침 조약은 한반도에서 평화를 제도하는 한 수단이다.
불가침조약을 둘러 싼 북미간의 공방이 첨예한 이유는 한반도 평화 제도화가 주한미군을 지렛대로 한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흔든다는 점에 있다.
불가침 조약은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를 통해 주한미군의 지위를 흔들겠다는 이북의 요구와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부정. 도전하려는 이북을 순치. 제압하려는 미국과의 싸움이다.
이북의 입장에서 보면 평화와 체제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 소극적, 수세적인 측면과 함께 평화의 제도화를 주한미군의 지위를 흔들겠다는 공세적인 측면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필자가 보기에 한반도 정세의 특징은 후자이다.
지난 10여 년 간 한반도 정세가 정치군사적 대결로 일관되어 온 것은 탈냉전 이후 미국의 유일패권전략에 맞서 거대 강국, 유일 패권국 미국에게 호혜평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집요한 이북의 공세가 주된 측면이다.
반면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미국의 군사적, 경제적 압박이 주된 측면이다.

② 불가침 조약 체결은 한국경제의 진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경제는 몇가지 점에서 커다란 전환적 지점에 와 있다.
첫째는 중국 제조업의 성장에 따라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유휴자본을 빨아들이며 연 7~8%의 고도 성장을 하고 있다.
중국의 고도 성장은 해외 자본의 기술력과 결합하여 철강, 자동차, 무선통신 등 기술력이 필요한 산업의 급속한 성장을 낳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기술력이 향후 5~10년 정도면 잠식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나온 구상이 이른바 금융허브 구상이다.
제조업의 경쟁력이 취약하므로 금융 중심지로 한국을 개발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해외자본 유치의 걸림돌이 되는 것은 민주노총과 재벌이다. 민주노총은 공공부문, 대기업 노동자들을 조직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재벌은 전근대적인 지배소유구조가 해외자본 유치의 장애가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향후 노무현 정부와 민주노총의 갈등은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했던 동일한 논리로 이른바 국익을 앞세워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한편 재벌 개혁은 두가지 의미가 있다.
전근대적인 황제 경영으로 투자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측면과 1인의 배타적 지배를 온전케 하는 복잡한 지배구조가 해외 자본 유치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전자는 당연히 해결해야할 문제이지만 후자는 어떨까? 집단소송제, 상속세-증여세의 포괄주의 도입, 상호출자의 제한 등 재벌을 유지하는 연결구조가 사라지면 이를 잠식하는 것은 결국 해외금융자본일 것이다.
따라서 핵심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생략한 채 진행되는 재벌 개혁 논쟁은 본질을 호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둘째는 동북아시아 경제협력 구상의 방향이다.
이는 이미 90년대말부터 여러 갈래에서 진행되었다.
유럽은 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을 체결하면서 아시아에 대한 포괄적인 정책 구상을 밝힌 바 있고 이의 연장선하에서 아셈, 유럽연합과 북과의 수교가 진행되었다.
일본은 90년대말 동아시아 통화위기 당시 동아시아 통화기금(AMF)를 제안한 바 있고 2001년에는 한중일+아세안을 연결하는 자유무역지대 구상이 구체화되었다.
한편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철의 실크로드에 이어 시베리아와 이르쿠츠크의 가스와 석유를 개발하는 에너지 협력 구상을 제출하고 있다.
90년대 후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여러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경제적인 차원에서 철도.도로 연결, 에너지 협력, 농.임.어업 협력 등에 합의하였다.
이미 성숙할 때로 성숙되어 있는 동북아시아 경제협력 구상이 어떤 궤적을 그리는가 여부가 한국경제에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필자는 다음의 두가지가 한국 경제의 향방을 좌우할 것으로 본다.

첫째는 390조에 달하는 부동자금(일반 가계대출이 450조에 육박하는 반면 부유층이 갖고 있는 여유자금의 규모가 이런 정도이다)이 건설적인 부문에 투자되는냐 여부이다. IMF 관리체제에 편입되면서 한국경제는 이전 시기 고투자 모델에서 설비투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설비투자가 감소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 경제의 총체적인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390조에 달하는 부동자금을 건설적인 투자로 돌리기 위해서는 부의 재분배, 내자.내수 위주의 경제정책 등 한국경제의 구조적 전환이 필수적이다.
이것은 주주자본주의, 신자유주의, 해외자본 위주의 경제 정책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동북아시아 경제협력의 방향인 데 미국의 입장은 동북아시아 경제협력이 구체화되는 것을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동북아시아 경제협력이 구체화되는 것은 동북아시아에서 평화의 제도화가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유럽과 동북아시아 경제권이 생성되면서 세계적인 범위의 달러 패권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의 경우 WTO 가입을 통해 미국과의 우호적인 환경과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에 편입되는 것을 기본으로 경제 전략을 짜고 있다.
중국의 경우 일본과의 협력은 불필요하거나 껄끄러울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입장은 동북아시아의 경우 중국의 경제 성장에 방해가 되는 불필요한 긴장과 대결이 조성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필자의 판단으로 미-중 간의 대립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허구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한국경제의 진로를 개척하는 데 미국의 존재는 핵심적이다.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390조에 달하는 부동자금을 건설적인 곳에 투자하는 것도 남북+동북아시아를 연결하는 경제협력 구상도 실현될 수 없다.
좋든 싫든 미국과 정면에서 대결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가침조약을 둘러 싸고 북미가 벌이는 파워게임은 한국경제의 진로라는 견지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글을 맺으며

한반도 정세의 핵심은 전쟁이냐 평화냐가 아니다.
전쟁의 근원을 제거하고 평화를 제도하하여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제압하여 민족의 활로를 열 것인가가 정세의 중심이다.
어떻게든 전쟁만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발상의 연장선에서 북핵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비위를 맞추어야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 나오는 것이다.
확고한 입장과 진취적인 자세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자.
미국으로 하여금 더 이상은 전쟁 어쩌고 하는 발언이 튀어 나오지 못하도록 이번 기회에 끝장을 보자.


주1) 미국의 현재 입장은 강경파의 경우 이북의 와해이고 온건파의 경우에는 이북의 핵능력의 완전 제거(북미 제네바 합의는 핵 능력의 완전 제거가 아닌 당시 수준에서의 동결이었다), 북미제네바 합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합의(핵 능력의 완전 제거와 경수로가 아닌 다른 방식의 보상, 경수로가 아닌 이유는 경수로도 결국은 핵 시설이라는 것이다)이다. 이것은 북미제네바 합의를 개악하는 것이다. 반면 노무현 정부의 입장은 에너지 협력을 통한 단계적 해결이다. 노무현 정부의 이러한 낭만적인 구상은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수준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선제공격과 사담 후세인을 직접 겨냥한 특수전, 미사일 공격이 난무하는 상태에서 에너지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한편 에너지 협력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포괄적인 평화체제가 성립된 이후에 가능한 문제로 미국 내 온건파가 구상하는 북미제네바 합의의 개악과 경수로를 대체하는 다른 형식의 보상으로서의 에너지 지원과는 출발과 발상, 뿌리와 철학이 다른 것이다. 경수로, 동해선 연결을 막는 판에 군사분계선을 가로지르는 파이프 라인 건설을 미국이 그대로 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미국에 대한 환상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은 이라크에 일정 기간 발목이 묶이면서 이북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할 여지가 없다. 미국은 대화의 명분을 차리면서 일정 기간 정세를 유예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이 제 발로 찾아가 미국의 대화 회피의 구실은 다자간 회담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은 적과 아를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이적 행위이다.

주2) 북과 이라크는 미국의 반확산전략의 대상이다. 그러나 양자가 걸었던 길은 확연히 다르다. 90년대 초반 미국의 반확산전략의 대상이었던 북과 이라크의 경우 후자는 걸프전으로 귀결된 반면 전자는 북미 제네바 합의로 귀결되었다. 90년대 전 기간 진행된 경제제재에서 이라크는 무장해제의 길을 걸었다면 이북은 선군정치를 채택했다. 이 결과 전쟁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이라크는 미국을 공격할 변변한 무기는 커녕 정규군을 동원한 지상전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 게릴라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북은 주한미군, 주일미군은 물론 미국에 대한 상당한 타격력을 보유하였다. 따라서 이라크와 북의 경우 쟁점이 다르다. 이라크는 어떻게든 미국의 침략을 막아내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이북의 경우에는 전쟁이냐 평화냐 보다 평화체제를 공고히 실현하여 전쟁의 근원을 제거할 것인가 아니면 평화 체제를 통해 미국의 패권적 지위와 미국의 정치군사적 공작의 여지를 남겨둘 것인가의 문제이다.

주3) 필자가 보기에 이북의 핵 능력은 핵 물질, 핵 운반수단, 핵 기폭 장치 등 핵 기술 등 여러 갈래의 핵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이를 조합하여 핵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막바지 단계에 있다. 만약 미국이 끝내 불가침 조약을 거부하면 핵 선언을 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면 현 수준에서 핵 능력을 동결하되 미국에 대한 정치적 카드는 그대로 남겨 둘 것이다. 불가침조약만 믿고 핵 능력자체를 원천적으로 폐기하는 것은 국제 정치의 생리에 맞지 않는다. 이 경우 미국은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기보다는 이북의 핵보유를 용인하되 수출을 막는 선에서 타협하고 대신 전역미사일방어체제에 한국과 일본을 결속하는 방향에서 새로이 군사적 패권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이북의 핵 무장이 미일 동맹체제를 근본적으로 막고 균열시켜 미국이 전쟁이냐 불가침조약이냐의 양자 택일밖에 없다는 주장과 배치된다. 이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지는 심각한 토론의 대상이다. 반면 중요한 것은 이북의 핵 무장이 미일동맹 체제를 근본적으로 해체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일면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미사일방어망 체제에 한국과 일본을 통합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미사일방어망 체제에 한국이 편입되는 것을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보론) 사담 후세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사담 후세인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이번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중동은 중세기 오스만 터키가 지배했다.
오스만 터키가 1차대전 이후 패망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 전역을 갈라 위임통치 형식으로 지배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를 대신해 중동을 장악한다.

2차대전 이후 중동 지역의 쟁점은 친미와 봉건 왕정이라는 미국의 구도와 민족주의와 근대화(공화주의, 사회주의 포함)를 요구하는 아랍 민중의 저항으로 특징된다.
후자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것이 이집트의 나세르와 바트당, 이란의 석유 국유화를 주도했던 모사데크이다.
이들은 낭만적인 성격으로 좌절되거나 변질되었다.
한편 모사데크는 53년 미국의 개입으로 붕괴되었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민족주의와 근대화라는 50,60년대 아랍 민족의 요구가 좌절된 기초위에서 출현한 신조류로 아랍민족의 좌절과 복고적 경향을 반영한다.

80~88년 이란-이라크 전쟁은 이란에서 발원한 이슬람 근본주의가 중동의 친미 왕정을 위협하자 미국이 이라크를 사주하여 이란을 제압하고자 벌인 것이다.
후세인은 미국에 저항하는 반제전선을 구축하기보다는 이를 교란하여 역사의 후과를 남겼다.

후세인은 90년대 미국의 경제봉쇄에도 불구하고 국가 기반이 붕괴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내부를 공고화시키는 데는 성공하였다.
대부분의 제 3세계 국가들이 미국의 경제 봉쇄 때문에 붕괴되어 버린 것에 비하면(90년 니카라구아의 오르테가 정권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나라들이 전쟁보다는 군사적 위협을 배경으로 진행된 정치공작과 경제봉쇄로 무너졌다) 전자는 긍정적인 지점이고 후자는 평가의 대상이다.

이렇게 보면 다음의 몇가지 지점을 주의깊게 판단해야 한다.

첫째는 한 인간을 평가할 때는 그가 딛고 선 시대적 환경, 역사적 과제와 연동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개소문, 광해군, 세조 등을 사람을 죽였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지나치게 도덕적인 잣대인 것처럼 후세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보기에 후세인은 50, 60년대 중동 민중과 민족의 염원을 대변했던 나세르주의와 바트당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하고 그런 점에서는 큰 틀에서 역사의 순방향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탈레반, 오사마 빈 라덴 나아가 호메이니 등이 더 문제이다.

독재자, 학살자의 관점에서 후세인을 평가한다면 탈레반 등이 더욱 야만적인 세력이고, 이스라엘, 사우디는 물론 미국 자신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라는 악한 놈이 후세인이라는 덜 악한 놈을 공격했고 희생된 것은 애꿎은 여성과 어린이들이라는 논리는 잘못된 것이다.
후세인은 어쨌든 미국의 학살에 가까운 경제제재를 이겨내고 조국을 보위한 인물이다. 이라크가 군사력의 절대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남부에서의 게릴라전을 통해 미국을 궁지로 몰아간 점을 주의깊게 보아야 한다.
설사 그가 악한 자가 하더라도 미국의 침략적 행위가 면죄되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가 독재자라고 해서 미군이 서울을 포위하고 시가지에 융단 폭격을 가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둘째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평가이다.
9.11 테러는 전세계 반제전선에 중대한 난관과 시련을 가져왔다.
더구나 알-카에다를 비롯한 이슬람 근본주의 계열의 테러 활동은 미국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퇴조하고 있다.
이번 전쟁의 중대한 교훈의 하나도 정치적 전망과 대중을 결여한 테러리즘의 몰역사성이다.
이들은 복수심에 얽매여 적과 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성전을 외치곤 했다.
이러한 낙후한 인식으로는 제국주의의 교활한 정치공작을 이겨낼 수 없다. (팔레스타인이 벌이는 자살폭탄 테러는 이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다. 위의 평가에서 팔레스타인은 예외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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