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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순> 국보법 철폐투쟁의 정치적 의의와 민주노동당의 역할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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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일바라기 작성일04-12-26 12:54 조회2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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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법 철폐투쟁의 정치적 의의와 민주노동당의 역할과 과제



(박경순 / 한국진보운동연구소 소장)




‘국보법 사수’에 사활을 걸고 있는 조선일보가 “민주노동당내에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 집중하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보도한 뒤 프레시안과 오마이 뉴스 등에서 이를 대서 특필함으로써 민주노동당내 당면 투쟁방향에 대한 논쟁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선일보의 보도는 명백히 국보법폐지 투쟁전선에 균열을 내기 위한 악의적인 의도의 산물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해 투쟁하는 민중들은 조선일보의 의도를 간파하고 단결과 투쟁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어 조선일보의 의도를 분쇄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이미 노출된 이견을 억지로 감춤으로써가 아니라 건강한 사상투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해 몇가지 견해를 정리해본다.



1. 국보법 폐지투쟁은 보수정치 분쇄투쟁이다.

민주노동당 내에서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 동의하지 않는 당원은 단 한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 당력을 집중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그것은 왜일까?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국보법 폐지투쟁의 정치적 의의에 대한 인식의 불일치도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반대론자(국보법 폐지투쟁에 총력집중하자는 주장에 대한 반대론자; 이하 반대론자라 지칭함)들은 대부분 국보법 폐지투쟁을 기능주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공통성을 갖고 있다.
즉 자신의 심장과 영혼으로 국보법 폐지를 열렬히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진보적 민중들의 정치적 의제로 되고 있기 때문에 반대하지 못하고 찬성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국보법 폐지 문제’가 여러 가지 정치경제적 개혁과제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다.

과연 ‘국가보안법 폐지문제’가 여러 가지 정치적 사안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놀랍게도 바로 현재의 정치권의 현실  속에서 찾아질 수 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가 “자신의 대표직을 걸고라도 국가보안법을 사수하겠다”고 선언하고, 한나라당과 수구세력들이 총결집하여 ‘국가보안법 사수’를 외치며, 여기에 총력집중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리고 왜 수구세력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대변자인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들이 ‘국보법 사수’에 사활을 걸고 있는가?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국가보안법 문제’와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이 직결되어 있기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의 보호 속에서만 자신들의 특권적 정치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들은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하여 수구반동적인 언론활동을 벌여나감으로써 언론권력의 성역을 유지할 수 있기때문이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은 한국사회의 분단체제와 이데올로기를 지탱해주는 중심적 기둥이다.
냉전수구세력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보호자인 국가보안법이 없이는 하루라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보안법 폐지는 곧 자신들의 특권적 정치적 지위와 생명의 종말을 의미한다.

‘국가보안법’은 낡은 보수정치질서의 핵심적 기둥이다.
한국의 보수정치질서는 한마디로 국가보안법 체제이다.
국가보안법 체제는 국가보안법과 각종 공안탄압기구, 반공반북이데올로기를 무기로 반동적 수구세력들의 정치경제적 특권을 보장해 주는 정치체제이며, 본질적으로 반민중적이고, 반민주적인 파쇼체제이다.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는 낡은 국가보안법 체제 아래에서 민중의 정치적 참여가 배제되고 진보 정치가 원천적으로 부정된 보수 정치만 판을 쳐왔다.
따라서 보수정치를 타파하고 진보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선차적으로 국가보안법 체제를 구조적으로 붕괴시켜야 하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그 출발점으로 된다.

한국의 보수정치의 주인은 반동적 수구세력이다.
반동적 수구세력은 6월 항쟁이후 민중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으로 점차 약화되고 있다.
특히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이후 정권을 차지하지 못하고 지난 4.15총선이후에는 국회마저 빼앗겨 정치권에서 소수세력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이땅의 특권세력, 지배계급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특권계급으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개혁과 진보를 필사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들이 의지하고 있는 유일한 버팀목은 바로 국가보안법이며, 국가보안법에 기초하고 있는 공안탄압기구와 반공반북이데올로기이다.
한국의 진보정치는 보수정치의 온상이자 주인인 반동적 수구세력들을 척결하지 않고서는 진척될 수 없다.
그리고 반동적 수구세력들을 척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핵심적인 중심고리는 바로 국가보안법의 폐지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의 폐지문제는 단순히 하나의 개혁입법을 통과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진보정치와 보수정치의 첨예한 계급투쟁이며, 낡은 정치와 새로운 정치의 운명을 판갈음하는 판갈이 투쟁이며, 개혁진보세력과 반동수구세력과의 생사를 건 정치적 대결전이다.
그리고 이 대결에서 승자가 향후 정세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나가게 된다.
국가보안법 폐지문제가 갖는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성격 때문에 한나라당 등 반동적 수구세력들은 본능적으로 국가보안법의 사수를 위해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당면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해 보면 국가보안법 투쟁의 정치적 역사적 의미가 보다 분명해 진다.
지금 한국사회는 냉전과 분단의 유지온존이냐, 민족화해와 공존공영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으며, 전쟁이냐 평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분단의 유지온존은 단순히 현상유지가 아니라 냉전적 대결과 전쟁으로 나가게 되며, 역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대결과 전쟁을 낳는 냉전적 분단구조를 혁파하고 남북 화해협력 공존공영을 구조화 제도화해야 한다.
이러한 역사적 갈림길에서 한국의 반동적 수구세력들은 미국부시정부의 냉전적 대결정책, 전쟁정책을 추종하면서 전쟁의 참화를 불러올 남북대결을 부추기면서 남북 화해협력정책을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를 수호하고 남북 공존공영의 길을 여는가 열지 못하는가의 성패는 냉전적 수구세력들을 고립화하고 약화몰락시킬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좌우된다.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은 바로 이들을 고립약화시킬 수 있는 중심고리로 된다.

반대론자들은 안타깝게도 국가보안법문제가 각 정치세력간에 얼마나 커다란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가를 바로 보지 못하고, 그것을 하나의 법령을 개폐하는 문제로 보거나, 여야의 정쟁으로 보는 그릇된 관점에 빠져 있다.
그들은 특히 국가보안법 문제에 민주노동당의 운명이 얼마나 걸려 있는지 직시하려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진보와 보수간의 구체적인 계급적 대결에 대한 무지몽매이며, 스스로 정치의 문외한임을 고백하는 소치이다.



2. 민주노동당은 민중과 함께 투쟁하는 정당이다.


지난 수십년동안 이땅의 진보운동 민중운동을 가로막아온 제일의 원흉은 국가보안법이다.
낡은 체제의 지배세력들은 국가보안법을 무기로 휘둘러 민중운동 진보운동을 탄압하고 가로막아왔다.
이땅의 민중들의 자주와 진보를 위한 투쟁의 역사는 곧 국가보안법과의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도 국가보안법의 칼날은 여전이 민중들과 진보운동진영에 겨누어져 있다.
이땅의 노동자와 민중들은 국가보안법의 칼날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우면서 민주주의와 개혁, 민중생존권을 수호하고 발전시켜 왔으며, 민중들의 정치적 권리를 옹호발전시키고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한발한발 진척시켜오면서 국가보안법을 약화시키고 무력화시켜왔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의 최대의 피해자 희생자도 민중과 진보정치세력이며,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의 주체도 민중과 진보정치세력이다.
더 나아가 국가보안법과 가장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것도 바로 민중과 진보정치세력이다.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은 결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싸움이 아니며, 반동적 수구세력들과 민중들과의 투쟁인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반동적 수구세력과 민중들과의 투쟁은 지금 막바지 고비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국가보안법 철폐’와 ‘정치사상의 자유’를 향한 민중들과 진보정치세력들의 완강한 투쟁의 성과로 인해 국가보안법 폐지문제가 정치권의 최대의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이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승리이다.
정치권에서 금기시되었던 국가보안법 폐지문제가 가장 중대한 정치적 현안문제로 부각되었다는 것 자체가 완강하게 전개해온 민중투쟁의 귀중한 성과이자 열매이다.
또한 이미 국가보안법 폐지의 주객관적 환경과 조건이 숙성되고 역량이 무르익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이야말로 국가보안법 폐지의 절호의 기회이다.
이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면 언제 다시 이러한 기회가 도래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보아도 이번 정기국회 늦어도 2월 임시국회까지 국가보안법 폐지를 관철시키지 못하게 되면 17대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는 물 건너 갔다고 보는 것이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분석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의 역사에서 지금보다 유리한 조건과 환경이 만들어진 적이 없다.
개혁과 진보를 염원하는 이 땅의 민중들은 당연히 이러한 유리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모든 힘과 역량을 총동원하여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역사적 사명이며, 당연한 원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민주노동당내 일부 간부들은 끊임없이 열린우리당의 태도와 안색을 살피며, 그들이 적극적이면 고무되고 소극적이면 물러서더니 이제는 “100%불가능론”을 내세우며, 당이 실현가능성도 없는데 온 힘을 다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는 지극히 비주체적이고 방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과 태도야말로 스스로를 열린우리당의 2중대로 격하시키는 비주체적 태도라 아니할 수 없다.
도대체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의 주체는 누구인가?
열린우리당인가 아니면 민중인가?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의 동력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열린우리당인가? 아니면 민중의 투쟁력인가?

이들은 적반하장으로 보안법폐지투쟁에 당이 주력하는 것을 열린우리당의 2중대라고 매도하는 망발을 부끄럽지도 않게 내뱉고 있다.
여기서 ‘2중대론’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려보자.
2중대 론의 본질은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복무하고 그들의 편을 드는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과연 반대론자들의 주장대로 국가보안법 폐지의사가 전혀 없는(?) 열린우리당의 타협주의 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측면을 대중적으로 폭로하고 규탄하면서, 말로나마 국가보안법 폐지에 적극적인 측면을 고무 격려하여 한나라당과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도록 압박하고 강제하여 소극적인 태도를 적극적인 태도로 바꾸어 국가보안법 폐지를 강제해 내기위해 투쟁하는 것이 ‘2중대’인가?
아니면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 의사를 갖고 그것을 관철시켜나가려고 하면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을 열심히 하여 열린 우리당을 도와주고 반대로 그들이 한나라당과 타협하면서 국가보안법폐지에서 손을 떼려고 하면 민주노동당도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서 발을 빼서 열린우리당이 쉽게 타협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서 열린우리당의 보조자역할을 하는 것이 ‘2중대’인가?

명백히 현재 국회의 의석구조로 보아 열린우리당이 결심하지 않으면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은 열린우리당의 태도에 구애받지 않고 투쟁하는 민중과 함께 열린우리당을 힘으로 압박함으로써 그들의 태도를 바꾸어 낼 수 있도록 대중적 강제력을 만들어 내는 투쟁인 것이지,
반대로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고 추진하는 과정에 ‘2중대’역할을 하는 투쟁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현가능성 유무를 갖고 국가보안법 투쟁에 집중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민중과 함께 투쟁하는 민중의 정당으로서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다면 그것이 정치적 중심투쟁사안으로 부각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반대로 충분히 실현가능하다면 역사가 민주노동당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역사가 민주노동당의 적극적 역할과 투쟁을 요구하는 것은 ‘폐지여부’가 중대한 정치적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음에도(객관적 실현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민중투쟁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해 한나라당을 고립시키지도 못하고 열린 우리당의 우유부단한 태도(기회주의적이고 타협적인 태도)를 중단시키지 못해 국가보안법의 폐지가 중대한 난관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이 중대한 난관을 열명의 의원과 수만 명의 당원의 단결된 힘과 투쟁으로 돌파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엄숙한 요구를 외면하고서야 그 어찌 진보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투쟁하는 민중과 함께 하는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3. ‘민생중심론’은 ‘경제주의’의 변종이다.


무릇 모든 정당은 자신의 속마음은 어떻든 겉으로는 민생정당을 표방한다.
하물며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만들어진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민생을 외면하고서야 그 어찌 민중의 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의미에서 민주노동당이 민생정당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주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현 정세(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싸고 각 계급계층들이 첨예한 정치적 계급투쟁을 벌이고 있는 정세)에서 국보법 폐지투쟁에 총력집중하지 말고 세금감면, 기업도시, 국민연금 등 경제현안에 종합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 일관된 실천을 하자는 민생중심론은 명백히 ‘경제주의’의 변종이며, 더 나아가 개량주의적 사고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정기국회 기간동안에 100%실현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중심적 투쟁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도대체 각종 경제현안에 대한 종합적 프로그램은 어떠한 실현가능성을 믿고 이것을 중심으로 일관된 실천을 하자는 것인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의석 10석을 갖고 구체적 경제적 현안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민생중심론자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그들은 100% ‘실현가능성’을 갖고 접근하게 되면 10석의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의 2중대를 거부하고서 의회에서 ‘실현가능한 것’이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민주노동당의 경제적 정책과 노선을 대중들에게 선전하는 과정을 통해 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장시키자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경제적 문제야말로 현재 대중들의 주된 관심사이고 대중생활의 가장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에 경제적 문제를 중심으로 하지 않으면 폭넓은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제주의이다.

경제주의는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는 경제적 문제야말로 가장 대중적이며, 대중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며, 가장 빠르게 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장시켜 낼 수 있다고 보고 경제적 문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투쟁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둘째는 낡은 정치구조를 구조적으로 타파하고 진보적 정치구조를 확립하는 사회역사적 변혁을 향한 일관된 전략전술을 갖지 못한 채 기존의 체제에 안주하면서 개량적 성과에 만족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민주노동당 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소위 ‘민생중심론’은 이러한 두 가지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 이것은 과거 민주노동운동이 정치투쟁과 정치세력화를 외면한 채 임금인상과 근로조건개선투쟁, 일상적 조합 활동에 매몰된 역사적 경험에 대한 반성적 평가를 외면하고 다시 한번 그러한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노동자 대중과 민중들이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이루려는 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피나는 투쟁을 벌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민중이 스스로 정치의 주인으로 서지 못하게 되면 정치적 권리는 고사하고 경제적 요구마저도 제대로 관철해 낼 수 없다는 피어린 교훈 때문이 아닌가?
민중이 스스로 정치의 주인이 되는 길은 결코 소수정당으로 머물러 있어서는 불가능하다.
수권정당으로 등장하고 궁극적으로 집권을 실현해야 한다.

수권정당으로 등장하고 집권을 실현하려면 낡은 정치구조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구조를 세워나가야 한다.
낡은 정치구조를 타파하고 새로운 정치구조를 세워나가는 길은 대중의 정치적 요구와 이익을 내세우고 대중과 함께 정치투쟁을 전개해 나가면서 낡은 정치세력들을 하나씩 하나씩 무너뜨려 나가는 치열한 계급투쟁, 계급적 정치적 대결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정치세력화를 통해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과제인 것이다.

현 정부와 집권여당이 성장 발전해 온 과정을 보면 그들이 과연 대중의 경제적 요구와 이익을 반영하는 민생활동과 투쟁 즉 민생정치를 잘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이 집권의 길에 이르게 된 것은 순전히 정치투쟁의 덕분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민중들의 정치투쟁의 덕을 본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게 되면 반대론자들은 그러한 정치는 낡은 정치의 대명사이며, 새로운 정치는 정책과 노선으로 승부하는 정치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히 오산이다.
낡은 분단질서와 구조, 반민중적이고 반민족적인 정치경제구조가 그대로 온존하는 한 낡은 정치세력과 새로운 정치세력과의 치열한 정치적 대결은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며, 한국정치는 향후에도 더욱 더 치열한 정치적 대결이 펼쳐지게 될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민생론자들이 말하는 정책과 노선은 명백히 집권을 향한 정치적 전략과 노선이 아니라 대중의 경제적 생활적 요구를 반영한 미시적 정책대안들이며, 이러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해 나가는 정치활동을 중심으로 당 활동을 벌이자는 것은 낡은 정치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변혁적 정치투쟁을 포기하거나 부차화 시키자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명백히 말하지만 현 시기는 미시적 정책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과 전망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치열한 정치투쟁노선과 방향을 제시하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민중과 함께 투쟁하는 거대한 전략적 투쟁의 시대이다.
현 민주노동당에게 요구되는 작은 정치가 아니라 큰 정치이다.
의석 10을 가진 미니정당이 작은 정치에 매몰된다면 대중의 외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노동당 10석의 의석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요구와 바람인 것이지, 우수한 정책대안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다.
썩은 정치를 청산하고 맑고 깨끗한 새로운 정치 진보정치를 수립하라는 역사적 명령인 것이다.



4. 민중의 힘을 굳게 믿고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 적극 동참하자.


여야 대표들이 지난 21일 여야 대표 4인 회담을 통해 ‘4대쟁점법안은 합의 처리를 원칙으로 하되, 회기 내 처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야합함으로써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이 중대한 난관에 봉착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야합을 보고 일부 사람들은 “이미 그럴 줄 짐작했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 힘을 집중하자고 얘기했던 사람들은 정세에 대해 무지했다”고 비판의 화살을 돌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패배주의적 현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고와 견해는 국가보안법 폐지의 주체가 누구인가? 에 대한 오도된 사고의 산물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열린우리당의 요구도 아니고, 열린우리당의 힘에 의해서 가능하지도 않다. 그것은 바로 민중의 절박한 요구이며, 민중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즉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의 주체는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민중이라는 점이다.
국가보안법폐지투쟁은 민중과 수구반동세력과의 치열한 대결전인 것이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양자의 힘의 역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과 밀실야합을 하게 된 것은 바로 민중과 수구반동세력과의 힘의 역관계에서 민중의 힘이 밀린 결과일 뿐이다.
민주노동당이 열린우리당이 순순히 국가보안법폐지에 앞장설 것이라고 믿고 투쟁하였다면 그것이야말로 열린우리당의 2중대적 사고의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반대로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예단하고 투쟁에 나서지 않는 것 역시 국가보안법 폐지를 열린우리당의 수중에 맡겨 놓는 비주체적인 태도이며, 패배주의적 발상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민중이 주체가 되어 투쟁의 전선으로 대중들을 결집하고, 이 결집된 힘으로 반동수구세력들을 공격하여 그들을 패퇴시키고, 열린우리당을 강하게 압박하여 국가보안법 폐지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민중의 힘의 결집이 충분치 못해 이러한 목적으로 아직 달성하고 있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민중의 힘을 충분히 결집시키지 못한 하나의 요인은 바로 우리 자신 내에 존재하고 있는 소극주의와 패배주의의 덫이다.

일부사람들은 현재의 정세가 갖는 역동적 성격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정된 선입견으로 상황을 예단하여 패배주의의 늪에 빠져 버려 주동적인 활동과 투쟁을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도대체 열린 우리당이 한나라당과 야합할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국가보안법을 연내에 폐지할 것인가? 하고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에 소극적으로 나왔다.
그들은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밀실 야합한 현실을 놓고 “그거 봐라. 내 생각이 맞지 않았는가?”하고 희희낙락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명백하다.
열린우리당의 지도부는 정치적 잣대로 계산하여 어느 것이 자신들의 당면 정치적 이해득실에 유리한가를 놓고 정치적 판단과 정치적 행위를 한다.
만약에 민중의 투쟁이 활화산처럼 불타올라 국가보안법 폐지를 밀어붙이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세라고 판단했다면 야합을 했겠는가?
그들은 야합을 마치 미리 정해진 계급적 본성처럼 말하는데, 야합은 미리 정해진 계급적 본성의 결과가 아니라 현실적 이해득실의 결과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렇다면 민중의 이익을 앞장서서 실현하는 민주노동당은 조그마한 가능성이 있더라도 비록 그 가능성이 낮더라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투쟁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민중의 힘과 함께 라면 비록 의석 10석이라하더라도 엄청난 민중투쟁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의석 10석의 힘은 의내 내에서 의결정족수의 힘이 아니다.
의결정족수라는 측면에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는 초라한 의석이다.
그러나 민중들의 투쟁력과 결합되게 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소수정당의 한계 속으로 도피하는 것이야말로 민중의 힘을 믿지 못하는 소치이며, 민중에 대한 배신적 사고이다.
한사람의 투사가 세상을 뒤바꾸어 놓을 수 있다.
의석 10석이면 세상을 10번 뒤바꾸어 놓을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의원은 단순히 의회 내에서 표결거수기가 아니라 거대한 민중의 역동적 투쟁과 전진의 정치적 지도자이며, 대표자이다.

1.000명의 단식단이 12월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의 불꽃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만들고 있다.
일부사람들은 단식소식을 언론들이 잘 보도하지도 않으므로 “삭발단식은 국민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왜 삭발 단식을 하였는가에 대한 무지한 사고이다.

삭발단식은 결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이벤트도 아니고, 언론보도를 위한 수단도 아니다.
그것은 민중들의 투쟁의지를 모으기 위한 횃불인 것이다.
나부터 죽기를 각오하고 투쟁한다는 결의를 밝히고 주변을 결집해 나가게 되면 그러한 투쟁의지들이 모아지고 그 힘으로 조직을 발동하고 대중을 발동하고 결집함으로써 거대한 대중적 운동을 일구어 낼 수 있다.

300인의 단식이 1000인의 단식으로 확대되고, 그 과정에서 대중들이 움직이고 각종 시민 사회단체가 움직이고 거대한 촛불행사가 이루어 져 온 과정은 바로 이것을 웅변해 주고 있다.
지난 12월 18일 촛불문화제에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 넘어 1만 명 이상의 대중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모여든 것은 바로 그 산 증거이다.
그리고 삭발단식의 힘이 열린우리당 내 투쟁적인 세력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의 의회 내 농성을 이끌어 낸 것도 바로 그 산 증거이다.
지난 과정은 꺼져가던 국가보안법 폐지 불꽃을 다시 되살아나게 만들었다는 점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1000명의 이름모를 평범한 사람들의 단식도 그러한 힘을 가졌을 진데 만약에 민주노동당 의원 10명이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하고 기정 정치인들이 보여줄 수 없는 진정성을 갖고 호소하며 정말을 목숨을 내건 투쟁을 전개하여 대중들에게 감동을 준다면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질 것이며, 민중들의 투쟁을 폭발적으로 분출시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석의 힘이 아닌가?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의 단식이 국무총리의 방문사과를 불러낼 수 있었던 것을 상기해보면 명확하다.
투쟁의 승리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대중이 감동하면 역사를 바꾸어 낸다. 이것이 바로 감동의 정치미학인 것이다.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며,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비록 여야합의로 불리한 정세가 일시적으로 조성되긴 하였지만 이것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바다.
합의문자체도 지극히 모호하다.
합의처리와 연내처리를 기계적으로 결합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국회의장이 단독사회는 안보겠다고 선언했지만 그것도 현재의 국면이 계속된다는 전제 하에서이다. 여당지도부도 연내처리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하고 있다.

비록 말뿐이지만 그것은 대중의 요구, 당내의 요구가 비등하기 때문에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현 상황은 지극히 유동적이며 가변적이다.
또한 이번 임시 국회기간 내에 국가보안법 폐지문제가 결말이 나지 않고 끝날 수 있다.
아니 현 상황으로 보아 그럴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임시 국회 내에 통과되지 않는다고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상황이 종료되는 것도 아니다.
이번 임시국회기간 동안의 투쟁의 성과와 그에 의해 형성된 민중과 수구세력과의 역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즉 국가보안법문제가 어떤 형태로 이번 임시국회에서 마무리되는가가 향후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의 성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지금이야말로 마지막 힘을 모아내어 투쟁으로 불리한 상황을 돌파할 때이다.
새로운 기적은 종종 절망적 상황 속에서 탄생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열망하는 국민대중과 피해자들, 그리고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수만 명의 대중들의 힘을 굳게 믿고 다시 투쟁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민주노동당의 위대한 역할이 요구되는 때이다.


(200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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