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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대한민국 헌법 제정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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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붉은태양 작성일07-08-06 11:04 조회5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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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민국 헌법이 공포된지 59 주년 되는 날이다.
이승만 대통령을 위시한 대한민국 건국세력은 민주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북쪽 공산세력의 방해공작과 좌익세략의 반란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 결국 유엔 결의 에 따른 자유 총선거를 실시하고 대한민국을 수립할수 있었다.
제헌절을 맞아 1948년 긴박했던 헌법제정 과정을돌아 본다 .

<> 2월 26일 UN 한반도 자유 선거. 민주정부 수립 결의

유엔은 1947년 11월 4일 총회에서 1948년 5월 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자유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의하고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선거감시임무를 맡도록 했다. 이에 따라 한국임시위원단이 한국에 도착했으나 1월 23일 소련의 점령하의 북한은 위원단의 방북을 거부한다.
결국 유엔은 2월 26일 감시가 가능한 지역에서의 선거실시를 결의하고 , 남한은 국제기구의 결의에 따라 정부 수립의 과정을 시작한다.

<> 4월 19일  김구 평양 방문

1947년 10월 19일 여순 반란 사건에 이어 1948년에도 4.3사태 등
남한의 총선거에 반대하는 좌익 세력의 소요가 그치지 얺았다.
3월 25일 자유 선거를 거부한 북조선민주주의 민족 통일전선은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제안한다.
4월 19일 김구, 21일 김규식이 북한 을 방문하는 등 남한의 총선거에 반대하는 이른바 좌우합작파 정치안들이 5 . 10 총선거를 보이콧하고 평양을 찾는다. 그러나 이들의 방북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 오히려 북한 공산 정권 수립에 이용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5월 10일 총선거

유엔 한국 임시위원단의 감시 하에 남한에서 최초의 자유 총선거가 이뤄진다.
북한 공산세력의 집요한 방해 공작과 일부 남한 정치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거권자의 92.5 % 가 참여 하는등 한국민들은 독립 정부 수립을 위한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

5.10총선거를 통해 198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어 국회가 구성된다.
그중 188명의 지지로 임시 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 박사는 제 1 회
국회 개원식에서 개회사 전에 이윤영 의원에게 감사 기도를 부탁해다.  " 이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이 되어서 우리민족이 염원이 되는 모든 세계 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이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서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땅에 오며 자손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 사업을
완수하게 하여 주시 옵소서 . "

<>  7월 17일  헌법 공포

제헌 국회는 헌법기초작업에 착수한다.
6월 23일 국회에 제출된 헌법안은 헌법기초전문위원이었던 유진오 박사의 안을 기본으로 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중심제
단원제를 반영한것이 었다.
이 헌법은 7월 12일 국회를 통과하고 7월 17일 국회의장 이승만의 이름으로 공포 되었다.

<> 8월 15일 대한 민국 건국 선포

대한민국의 건국은 자유민주주의 를 기본으로 하는 신생공화국의 탄생일뿐 아니라 한반도 내에서 국제 기구의 결의에 따라 구성된
유일한 합법정부의 수립을 의미 했다.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방문을 거부한 북한은 1948년 2월 8일
정부수립에 앞서 인민군을 창설했다.
이후 8월 25일 찬반을 묻는 소련식 " 흑백 투표 " 를 거쳐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을 공포 했다.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헌법 선포및 자유 지식인 선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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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건국은 국제기구의 결의에 의해 구성된 유일한 합법정부의 수립이 자유 (자주적) 국가의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민족이
되었을 까 ?  유엔에 의한 자유 민주주의 정부로 인정을 받고도
21세기의 전후에 한반도 동시 유엔 가입을 공식인정을 다시 한번
발표해야만 했을까 ?
두번에 걸친 국제연합 공식인정은 무엇을 뜻하는것일까 ?
1948년 대한민국헌법 제정과정을 통해 큰문제점을
우리는 떠안고...!
우리들은 잘못된 과거를 잘살았다는 것을 생각을 해 보았을것이다 .
우리들은 과거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 백범 추도가( 건국 이념 ) "

한겨레의 통일과 염원 그리고 건국이념 김구 선생님을온국민들이  애도한 시 !

오호 여기  /  발구르며 우는 소리
지금 저기 /  아우성 치며 우는 소리
하늘도 땅도 울고 바다 조차 우는 소리
끝없이 우는 소리 / 임이여 가십니 까 ?
임이여 가십니 까 ?
이겨레 나갈길이 / 어지럽고 아득해도
임이 계시옴에 / 든든한 양 믿었더니 !
두조각 갈라진 땅 / 그대로 버리고서 ...
천고에 한을 품고 어디로 가십니까 ?
어디로 가십니까 ? / 임이여 가십니까 ?
어디로 가십니까 ? / 임이여 ....!

"  문화의 강국론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것을 원치 아니 한다.
우리의 부는 우리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
우리의 힘을 남의 참략을 막을 만하여 족하다.
오직 한 없이 가지고 싶은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의 자신을 행복하게 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 되기를 원한다.

< 백범 일지 중에서 ...>

문화의 중요성은 어느 시대 , 어느 역사에서도
상징으로 표현된 , 모습의 명예로운 사상입니다.
자원의 완성은 행복한 동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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