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와 영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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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펌사랑 작성일08-03-03 08:01 조회538회 댓글0건본문
★ 군대와 영어교육 ★ - 이순원(소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자라는 아이는 비온 다음날 오이처럼 자라는 아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빨리 자라는 아이 둘이 있다.하나는 남의 아이이고, 또 하나는 책 속의 아이다. 그래서 옛말에도 책 속에 남의 아이 크듯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란 큰아이가 군에 간 다음
우리집 4인용 식탁 한 자리가 오래도록 비었다. 아이가 군에 가 있으니 군과 군인에 대한 생각이 예전과 또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내 아이가 고등학생이라고 해서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고등학생이 내 아들이거나 내 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건 아이가 대학생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아들 같은 학생으로 보이고, 아들 같은 젊은이로 보일 뿐 내 아이와 그 아이들이 완전하게 하나로 겹쳐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내 아이가 군인일 때는 느낌이 확 달라진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군인이 내 아이처럼 보인다. 군복을 입은 그 아이가, 아니, 내 아이가 걸어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다.
특히 아이들을 군에 보낸 엄마들은 길을 가다가 군인을 보면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짓는다.
예전에 불렀던 군가대로, 사나이 한 목숨 바쳐 그 아이들이 이땅을 지키고 부모형제의 단잠을 지킨다면 그런 그 아들들의 안녕을 기도하고 지키는 것은 또 이땅의 어머니들일 것이다.
며칠 전, 그냥 거칠게 있는 그대로 말한다면 ‘영어 잘하면 군에 안 간다’는 기사를 보았다. 정권 인수위에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짜면서 영어교육의 중요성을 얘기하며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을
군대 대신 대체복무 형식으로 각급학교 영어교육 프로그램에 투입하겠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현실적으로 가장 알아듣기 쉬운 방법으로 표현하다 보니까 앞으로 영어를 잘하면 군대 안 가도 된다’ 하는 식으로 말이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런 의식 안에 우리의 군대는, 우리 아이들이 가 있는 군대는 어떤 자리에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군대 안에서 무슨 사고만 터지면, 또 무슨 이야기만 나오면 모든 텔레비전 방송국마다 군대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토론을 한다.
그때 어김없이 나오는 얘기중에 하나가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들자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 ‘가고 싶은 군대’라니, 대체 저기 나와서 토론하는 사람들이 군대가 어떤 덴지를, 또 국가에 군대에 왜 필요한지나 알고 나와서 저렇게 함부로 ‘가고 싶은 군대’ 운운하는지 화가 나는 것이다.
직업으로 선택해서든 아니면 다른 이유로든 자신이 군대에 가고 싶으면 가고,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는 모병제 국가도 아니고 남자들이라면 신체적, 혹은 심리적 결격 사유가 있지 않은 한 누구나 꼭 가야 하는 징병제 아래에서 그들의 말대로 ‘가고 싶은 군대’라니. 그냥 솔직히 말하자. 대체 이 세상에 ‘가고 싶은 군대’가 어디 있는가? 또 가고 싶어 군대에 가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지금도 우리 의식 속에 군대가 얼마나 가기 싫은 곳이면 앞으로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 국운을 새로 설계하는 정권인수위에서조차 영어교육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또 영어를 잘했을 때 얻게 되는 특권과 메리트를 말하면서 ‘군대를 안 갈 수 있는 특전’을 말하겠는가 말이다.
국가적으로 영어교육이 그렇게 죽기살기로 필요한지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백번 양보하여 영어교육이 죽기살기로 필요하다 해도 영어를 잘하면 군대를 안 갈 수도 있다는 말만은 다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국가적으로 죽기살기로 필요한 영어라면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아직 사회에 진출하기 전인 군인들에게도 죽기살기로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영어를 잘하는 사병이 입대하여 군에서 다른 보직을 받지 않고 영어교육병으로 근무를 한다면 모를까, 영어를 잘하니까 군대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면, 또 그런 것이 새 정권의 국가정책이라면 그거야 말로 앞으로 점점 더 ‘가고 싶지 않은 군대’를 국가가 정책적으로 만들어가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군에 가 있는 우리 아이들을 슬프게 하지 마라. 그리고 군에 아이를 보낸 이땅의 부모들을 슬프게 하지 마라. (펌)
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자라는 아이는 비온 다음날 오이처럼 자라는 아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빨리 자라는 아이 둘이 있다.하나는 남의 아이이고, 또 하나는 책 속의 아이다. 그래서 옛말에도 책 속에 남의 아이 크듯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자란 큰아이가 군에 간 다음
우리집 4인용 식탁 한 자리가 오래도록 비었다. 아이가 군에 가 있으니 군과 군인에 대한 생각이 예전과 또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내 아이가 고등학생이라고 해서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고등학생이 내 아들이거나 내 딸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건 아이가 대학생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아들 같은 학생으로 보이고, 아들 같은 젊은이로 보일 뿐 내 아이와 그 아이들이 완전하게 하나로 겹쳐지지는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내 아이가 군인일 때는 느낌이 확 달라진다. 길에서 만나는 모든 군인이 내 아이처럼 보인다. 군복을 입은 그 아이가, 아니, 내 아이가 걸어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다.
특히 아이들을 군에 보낸 엄마들은 길을 가다가 군인을 보면 오래도록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짓는다.
예전에 불렀던 군가대로, 사나이 한 목숨 바쳐 그 아이들이 이땅을 지키고 부모형제의 단잠을 지킨다면 그런 그 아들들의 안녕을 기도하고 지키는 것은 또 이땅의 어머니들일 것이다.
며칠 전, 그냥 거칠게 있는 그대로 말한다면 ‘영어 잘하면 군에 안 간다’는 기사를 보았다. 정권 인수위에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짜면서 영어교육의 중요성을 얘기하며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을
군대 대신 대체복무 형식으로 각급학교 영어교육 프로그램에 투입하겠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현실적으로 가장 알아듣기 쉬운 방법으로 표현하다 보니까 앞으로 영어를 잘하면 군대 안 가도 된다’ 하는 식으로 말이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런 의식 안에 우리의 군대는, 우리 아이들이 가 있는 군대는 어떤 자리에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군대 안에서 무슨 사고만 터지면, 또 무슨 이야기만 나오면 모든 텔레비전 방송국마다 군대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토론을 한다.
그때 어김없이 나오는 얘기중에 하나가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들자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 ‘가고 싶은 군대’라니, 대체 저기 나와서 토론하는 사람들이 군대가 어떤 덴지를, 또 국가에 군대에 왜 필요한지나 알고 나와서 저렇게 함부로 ‘가고 싶은 군대’ 운운하는지 화가 나는 것이다.
직업으로 선택해서든 아니면 다른 이유로든 자신이 군대에 가고 싶으면 가고, 가고 싶지 않으면 가지 않는 모병제 국가도 아니고 남자들이라면 신체적, 혹은 심리적 결격 사유가 있지 않은 한 누구나 꼭 가야 하는 징병제 아래에서 그들의 말대로 ‘가고 싶은 군대’라니. 그냥 솔직히 말하자. 대체 이 세상에 ‘가고 싶은 군대’가 어디 있는가? 또 가고 싶어 군대에 가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지금도 우리 의식 속에 군대가 얼마나 가기 싫은 곳이면 앞으로 이 나라의 정치와 경제, 국운을 새로 설계하는 정권인수위에서조차 영어교육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또 영어를 잘했을 때 얻게 되는 특권과 메리트를 말하면서 ‘군대를 안 갈 수 있는 특전’을 말하겠는가 말이다.
국가적으로 영어교육이 그렇게 죽기살기로 필요한지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백번 양보하여 영어교육이 죽기살기로 필요하다 해도 영어를 잘하면 군대를 안 갈 수도 있다는 말만은 다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국가적으로 죽기살기로 필요한 영어라면 학교에서만이 아니라
아직 사회에 진출하기 전인 군인들에게도 죽기살기로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영어를 잘하는 사병이 입대하여 군에서 다른 보직을 받지 않고 영어교육병으로 근무를 한다면 모를까, 영어를 잘하니까 군대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면, 또 그런 것이 새 정권의 국가정책이라면 그거야 말로 앞으로 점점 더 ‘가고 싶지 않은 군대’를 국가가 정책적으로 만들어가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군에 가 있는 우리 아이들을 슬프게 하지 마라. 그리고 군에 아이를 보낸 이땅의 부모들을 슬프게 하지 마라.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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