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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늙은이 작성일12-06-27 08:42 조회886회 댓글2건본문
| 조봉암, 조용수, 그리고 리영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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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다산연구소 대표) 조선공산당 창당요원인 조봉암은 광복 이후 박헌영이 이끄는 조선공산당에서 뛰쳐나왔다.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내려면 강건한 조직체를 결성해야 한다고 생각해 공산당 창당에 가담했지만, 미군이 남한에 진주하자 그는 공산주의 노선 자체가 실현불가능한 이데올로기가 되고 말았다고 판단했다. 그는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자유국가를 건설하는 데 매진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점진적 개혁론, 중립화 통일론, 체제수렴 통일론 그 뒤 조봉암은 더욱 온건하고 신중해졌다. 그는 진보당을 창당하면서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강령조차 수용하기를 주저했다. 체제가 허용하는 한계 안에서 점진적으로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신중한 개혁노선은 국민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는 56년 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이승만 대통령에 패했지만 표차는 크지 않았다. 이견(異見)에 대한 포용성 결핍은 여전해 조봉암이나 조용수와 비슷한 사상적 족적을 보인 이가 지난 5일 타계한 리영희 교수다. 그의 통일론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는 남북이 자체 수정을 거쳐 서로 닮아가는 과정을 밟아야 통일이 가능하다는, 이른바 체제수렴 통일론을 주장했다. 그는 남북이 상대방의 장점을 수렴할 때 국가통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남북 국민의 사회통합의 길도 열린다고 강조했다. 그가 상정한 이상사회는 친북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개인주의적 시장주의 요소와 공동체적 사회주의 요소가 융합한 사회민주주의 사회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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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suk194님의 댓글
suk194 작성일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지난 날의 암울한 과거의 역사도 우리가알아야 그것을 교훈삼아 전진하겠지요.
암울한 역사를 만들어간 그 자식이 이제 대통려으로 출마한다고 하니 참 좋은세상인것 같습니다.
마당쇠님의 댓글
마당쇠 작성일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