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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을 깜박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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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돌쇠 작성일09-03-06 10:45 조회753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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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스님 한 분이 있었다.
스님은 매일 산에 올라 좌선 수행을 하였고, 점심 즈음에는 직접 싸 온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어느 날 그곳에 원숭이 한 마리가 찾아왔다.
원숭이는 꼼짝 않고 앉아서 스님이 식사하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원숭이야, 너도 먹어라.”
스님은 원숭이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조금 나누어 주었다.
원숭이는 기뻐하며 그것을 받아먹고는 이내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다음날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점심시간이 되면 원숭이는 어김없이 찾아왔고,
스님은 자신의 도시락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계속해서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며칠이 지난 후, 원숭이는 전날보다 일찍 와서 좌선하는 스님의 옆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말하자면 원숭이도 스님과 함께 좌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님과 원숭이는 아주 친한 단짝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몇 개월 후의 일이었다.
그 날은 스님이 도시락을 깜박 잊고 수행 길에 나섰다.
산으로 오르는 도중에 생각이 난 스님은
‘상관없지. 뭐…… 끼니 한 때 거른다고 죽기야 하겠어?’
라고 생각하고 늘 앉는 자리에서 좌선을 시작했다.

그 날도 원숭이가 찾아왔고, 스님이 옆자리에 앉아 점심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원숭이가 아무리 기다려도 스님은 도시락을 꺼내지 않은 채 계속 좌선만 했다.
원숭이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스님이 도시락을 두고 왔기 때문에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원숭이가 알 리가 없었다.
원숭이는 스님 곁으로 다가와서 그이 소매를 잡아 당겼지만, 스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좌선을 했다.
원숭이가 또 옷깃을 잡아당기자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원숭이야, 미안하구나. 오늘은 내가 도시락을 두고 와서 먹을 수가 없단다.”
하지만 원숭이가 알아들을 리 없었다.
원숭이는 스님이 심술을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끝내 원숭이는 이빨을 드러내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스님의 주위에서 거칠게 날뛰며 일부러 스님의 몸에 부딪히는 행동까지 했다.

“네가 그렇게 화를 내도 잊고 온 것 어떻게 하겠느냐? 오늘은 그만 하고 돌아가거라.‘
스님의 설명을 이해할 리 없는 원숭이는 급기야 스님에게 달려들어 법의 위에 걸친 가사를 빼앗아
나무 위로 달아났다.
원숭이가 나무 위에서 자신의 가사를 갈기갈기 찢는 광경을 본 스님은 마침내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너는 지금까지 내가 베풀어 준 친절은 잊고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게냐? 뜨거운 맛을 보여 주마!”

하며 떨어진 나무토막을 주워 원숭이를 향해 냅다 던졌다.
“카악!”
운 나쁘게도 나무토막은 원숭이에게 명중하고 말았다.
원숭이는 그대로 나무에서 떨어지면서 딱딱한 땅에 부딪혀 피를 토하며 죽고 말았다.
땅에 떨어진 원숭이의 시체를 보면서 스님은 오랫동안 망연히 서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반성을 해도 그가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어긴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이 스님의 ‘과실’은 무엇일까?
물론
화를 낸 일이다. 화가 나서 발끈한 나머지 원숭이를 죽이고 만 것이다.
스님은 원숭이를 죽일 의사가 전혀 없었지만 화를 참지 못한 나머지 결과적으로는 살생을 저지르고 말았다.
스님이 화를 참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어 본다면 이렇게 밖에 대답할 수 없다.
‘스님이 좀 더 자중하셨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화를 내지 말라, 자중하라는 가르침 정도는 굳이 불교가 아니어도 있을 법한 말이다.

그렇다면 불자다운 충고는 어떤 것일까?
스님의 제일 큰 과실은 『시주행』, 즉 시주를 행하라는 계율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님은 자신의 도시락을 조금씩 원숭이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런 행위는 『시주행』이라고 불 수 있는데, 스님은 시주의 참된 의미를 잊고 원숭이에게

‘나는 너에게 베풀었으니까 너는 내게 감사해야 한다.’
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과오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주는 상대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받는 것이다.
즉 시주는 베풀어 준 쪽에서 고마움을 표시하고, 받는 자는 고마움을 표할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스님이 시주를 행했다면 스님은 매일 원숭이에게 고마움을 표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절대로 도시락을 잊을 수가 없다.
도시락을 잊고서는 시주행을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 날은 무엇 때문에 산에 간 것일까?
스님은 좌선만을 생각했기 때문에 그만 도시락을 깜박하고 말았다.
스님에게 있어서 좌선보다 중요한 것은 시주행이다.
스님은 이 점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원숭이를 살생하는 지경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줄 때 우리는 시주라고 생각하고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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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영원한친구님의 댓글

영원한친구 작성일

....................

봄나물님의 댓글

봄나물 작성일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