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바람 부는 현대중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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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당쇠 작성일15-04-16 00:00 조회42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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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 부는 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을 상징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골리앗투쟁과 세계1위 조선소라는 것이다. 사측은 골리앗투쟁을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현대중공업의 역사 속 한페이지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세계 1위 조선소라는 영예는 노사 공히 자부심의 상징이다. 골리앗투쟁을 넘어 세계 1위 조선소가 되기까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가 요즘 한탄과 비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수십년간 쌓아올린 금자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처참한 모습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는 것이 현대중공업에 청춘을 바쳐온 직원들의 복잡한 심경이다.
‘밤새 안녕하십니까’라는 직원들의 아침 인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고 있다. 활기가 넘쳤던 현대중공업의 아침은 구조조정이라는 칼바람 앞에 활력을 잃은지 오래다. 희망퇴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아래 구조조정의 광풍은 더욱 거세게 불고 있다. 어쩔수는 없겠지만 완장을 찬자는 동료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년을 보장받지 못한 완장들이 자신의 생명을 조금 더 연장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대책 없이 동료들의 희생을 담보로 꾸는 생명연장의 꿈은 일장춘몽이 될 것이다. 함께 사는 길을 택해야 한다.
현대중공업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은 영화 ‘고지전’을 스크린이 아닌 현실에서 보는 듯하다. 먹먹하고 멍멍하다. ‘고지전’ 내가 살기위해서 전우들까지 죽여 가며 살아남았지만 결국 이 전투에 영웅들은 아군의 폭격에 모두다 목숨을 희생당한다.
고지탈환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무차별 폭격으로 고지는 탈환했지만,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대중공업을 영화 ‘고지전’에 비유한다면 논리의 비약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은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은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공멸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오늘의 현대중공업을 일군 역전의 용사들이 용도 폐기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들에게 부여해야 할 것은 일방적인 구조조정이 아니라 명예로운 은퇴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전혀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희망퇴직은 세계 1위 조선소라는 현대중공업에 어울리지 않는 정책이다.
50대 베이비부머세대들에게 희망퇴직은 시한부 판정을 내리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구조조정만이 최상의 길인가에 대해 사측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을 해야 한다.
현장 노동자와 달리 사무관리직은 그동안 현대중공업의 대들보 같은 역할을 해왔다. 구사대라는 오명도 뒤집어쓰고, 온갖 부당한 대우와 처지에도 사무관리직 이라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된 권리주장도 하지 못했다.
회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고, 청춘을 불살라왔다. 회사를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희망퇴직을 제안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극복하며 함께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를 제시해야 한다.
돈과 권력 앞에 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지배와 통제에 혈안이 되어 있는 현대중공업이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지난 해 사상 초유의 적자라이다. 그러나 경영의 잘못에 대해서는 반성과 참회 없이 오로지 직원들의 목줄을 끊어버리려는 비정함에 어느 직원이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2014년을 제외하고, 현대중공업은 지난 6년간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을 거뒀다. 그런데 한해 적자를 핑계로 그 책임을 온전히 직원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그릇된 기업문화가 아닐 수 없다.
현대중공업은 정년을 앞두고 있는 직원들에게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퇴직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회사도 직원도 정년퇴직에 대한 믿음, 그리고 정년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불안과 우려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슬그머니 몇 개월치 월급을 더 주는 조건으로 희망퇴직을 강요하는 것은 현대중공업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행태이다.
대기업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 희망퇴직을 강제하는 것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현대중공업 사측이 깊이 깨달아야 한다.
칼바람이 아닌 더불어 함께 사는 따뜻한 바람이 부는 현대중공업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김진영 전 울산광역시의원
현대중공업을 상징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골리앗투쟁과 세계1위 조선소라는 것이다. 사측은 골리앗투쟁을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현대중공업의 역사 속 한페이지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세계 1위 조선소라는 영예는 노사 공히 자부심의 상징이다. 골리앗투쟁을 넘어 세계 1위 조선소가 되기까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가 요즘 한탄과 비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수십년간 쌓아올린 금자탑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는 처참한 모습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는 것이 현대중공업에 청춘을 바쳐온 직원들의 복잡한 심경이다.
‘밤새 안녕하십니까’라는 직원들의 아침 인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고 있다. 활기가 넘쳤던 현대중공업의 아침은 구조조정이라는 칼바람 앞에 활력을 잃은지 오래다. 희망퇴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아래 구조조정의 광풍은 더욱 거세게 불고 있다. 어쩔수는 없겠지만 완장을 찬자는 동료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년을 보장받지 못한 완장들이 자신의 생명을 조금 더 연장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대책 없이 동료들의 희생을 담보로 꾸는 생명연장의 꿈은 일장춘몽이 될 것이다. 함께 사는 길을 택해야 한다.
현대중공업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은 영화 ‘고지전’을 스크린이 아닌 현실에서 보는 듯하다. 먹먹하고 멍멍하다. ‘고지전’ 내가 살기위해서 전우들까지 죽여 가며 살아남았지만 결국 이 전투에 영웅들은 아군의 폭격에 모두다 목숨을 희생당한다.
고지탈환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무차별 폭격으로 고지는 탈환했지만,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대중공업을 영화 ‘고지전’에 비유한다면 논리의 비약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현대중공업 직원들은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결국은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공멸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오늘의 현대중공업을 일군 역전의 용사들이 용도 폐기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들에게 부여해야 할 것은 일방적인 구조조정이 아니라 명예로운 은퇴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전혀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희망퇴직은 세계 1위 조선소라는 현대중공업에 어울리지 않는 정책이다.
50대 베이비부머세대들에게 희망퇴직은 시한부 판정을 내리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구조조정만이 최상의 길인가에 대해 사측은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을 해야 한다.
현장 노동자와 달리 사무관리직은 그동안 현대중공업의 대들보 같은 역할을 해왔다. 구사대라는 오명도 뒤집어쓰고, 온갖 부당한 대우와 처지에도 사무관리직 이라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된 권리주장도 하지 못했다.
회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고, 청춘을 불살라왔다. 회사를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희망퇴직을 제안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극복하며 함께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를 제시해야 한다.
돈과 권력 앞에 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지배와 통제에 혈안이 되어 있는 현대중공업이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계속 유지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지난 해 사상 초유의 적자라이다. 그러나 경영의 잘못에 대해서는 반성과 참회 없이 오로지 직원들의 목줄을 끊어버리려는 비정함에 어느 직원이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
2014년을 제외하고, 현대중공업은 지난 6년간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을 거뒀다. 그런데 한해 적자를 핑계로 그 책임을 온전히 직원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그릇된 기업문화가 아닐 수 없다.
현대중공업은 정년을 앞두고 있는 직원들에게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퇴직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회사도 직원도 정년퇴직에 대한 믿음, 그리고 정년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불안과 우려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슬그머니 몇 개월치 월급을 더 주는 조건으로 희망퇴직을 강요하는 것은 현대중공업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행태이다.
대기업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이 희망퇴직을 강제하는 것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현대중공업 사측이 깊이 깨달아야 한다.
칼바람이 아닌 더불어 함께 사는 따뜻한 바람이 부는 현대중공업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김진영 전 울산광역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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