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여인들....(귀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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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비 작성일09-06-03 00:03 조회764회 댓글3건본문

항아리 이고 가는 촌부 1900년대

이완용의 부인 (1880년대)
명성황후 1890년대
조선여인의 전통복장 1890년대
1890년대초창기의 이화학당 학생들
한국 여인1895-1901년
가족사진1900년대
결혼 예복을 입은 신부
1902-1903년
귀족 1900년대 
기생을 지도하는 여인 1900년대
양반댁 여자아이
왕실 여인 1900
윤비(순종비)와 궁중 여인들1900년대
이화학당의 소풍행렬 1908년
일반 부녀자의 모습 1900년대 
일본 장교와 두 기녀 1901

젖가슴을 드러낸 기생 1900년대
중산층 가족사진
신식결혼 1910년대
이화학당 졸업생들 1911년
조선회화: 달구경 "경직도 병풍" 중에서19세기 이후 
서양인이 그림 조선여인"널뛰기 
색동 겨울옷 
조선여인의 식사 
조선여인들의 빨래 
죄 지은 여인의 매질 "행정도첩 (刑政圖帖)" 중에서19세기 말 작품
단오추천 "기산풍속화첩 (箕山風俗畵帖)" 중에서 19세기 작품 
1780년 경 작품으로 추정 행상 "풍속화첩 (風俗畵帖)" 중에서
다림질 19세기 초 작품
춘야밀회 (春夜密會) 19세기 
기방무사 (妓房無事) "혜원풍속도첩 (蕙園風俗圖帖)" 중에서1805년 이후 작품으로 추정
조선회화: 청금상연 (聽琴賞蓮)"혜원풍속도첩 (蕙園風俗圖帖)" 중에서1805년 이후 작품으로 추정
여인풍속 (女人風俗) 18세기 작품
*조선시대의 여인*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여성은 점차 권력에서 배제되었다.
남자만이 학문을 하게 되어 관직에 나갈 수 있는
- 과거를 볼 수 없어 관직에 진출할 길은 전혀 없었다.
- 물론 관직에도 내명부라
- 하여 남편의 지위에 따라 그 부인도 관품이 주어졌다.
- 하지만 그것은 실권이 전혀 없는
- 오히려 여성들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 그래도 외국처럼 결혼한
- 여자의 성을 없애는 일은 없었다.
- 조선사회에서 결혼은 개인의 만남이 아니라 집안간의
- 결합이었으므로 각자의 가문에 대해서는 존중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 조선시대 전체에 걸쳐 여성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보면 곤란하다.
- 조선전기에는
- 유교적 가치관의 남녀관이 정립되지 않아 여성의 사회,
- 경제적 지위가 남성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 재산의 상속도 남녀의 차별 없이 균등하게 이루어졌으며 조상에
- 대한 제사도 형제간에 돌아가면서 지내는
- 윤회봉사(輪廻奉祀)가 보편적이었다.
- 또한
- 아들이 없어도 딸이나 사위, 외손이 제사를 지낼 수 있어서
- 대를 잇기 위해 양자를 들일 필요가 없었다.
- 특히 남녀간을 맺어 주는 결혼은 여성의 입장이 더 유리하였다.
- 결혼식은 신부집에서 치러졌으며 자식을 낳아
- 한 가정을 이룰 때까지 친정살이를
- 하는 경우도 많았다.
- 조선사회의 남녀 관계는 17세기 이후 성리학의 지배이념이
- 확고하게 성립되면서 반전된다.
- 이후 조선사회는 철저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 질서가 강요되어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점점 열악해진다.
- 특히 결혼이 시집살이를 강요하는 형태로 변모하자
- 여성들의 지위 향상은 물론이고 사회진출은 완전히 차단되게 된다.
- 전통사회의 결혼은 임신, 출산, 양육, 가사노동 등을 의미한다.
- 따라서 결혼에 따른 시댁에 대한 여러 가지의 의무사항은
- 여성으로 하여금 더 이상 사회활동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하였다.
- 이러한 사회적 제약이 성립된 후의 조선시대 여성은 일반적으로
- 방갓을 쓰거나 장옷을 입고 얼굴만 조금 내민 소극적이고 폐쇄적인 모습이다.
- 그렇지만 모든 여성이 집안일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 농민과 하층민의 부녀자들은 얼굴을 가리지도 가릴 것도 없었다.
- 오히려 19세기가 되면 영남의 일부와 관북지방에서는
- 여자가 장터에 나가 상인과 상대하며 흥정을 벌였다.
- 특히 관북의 여성은 목축과 밭일을 남자 이상으로 하였다.
- 이것은 제주도의 여성이 바다에 나가 일하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 삶의 터전이 척박한 곳의 일반적 현상이었다.
- 18세기 이후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민중의 생활상을 그려낸
- 풍속화를 중심으로 조선 여성들의 생생한 삶의 체취를 느껴볼 수 있다.
- 이때는 여인네들이 사진 촬영을 꺼려했을 뿐 아니라 외국인에 의해 촬영되어
- 대부분의 자료가 국외에 소장되어 있다는 시대적 특수성에 의해 빚어진
- 매우 귀한 자료이다.
- 16세기 이후 서양인의 눈에 비친 한국여성을 삽화를 통해 살펴봄으로
- 우리 여성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게된다.
댓글목록
로미오님의 댓글
로미오 작성일귀한자료 잘보고 갑니다. 감사~
스카이님의 댓글
스카이 작성일사진이 잼 있는것도 있구..잘 보고 가요..ㅛㅛ
영원한친구님의 댓글
영원한친구 작성일귀한자료 ㄳ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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