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양수리에 있는 두물머리 마을을 찾았습니다.
때마침 마주친 인심좋은 시골 할머니의
웅변처럼 정열적인 길 안내에도 불구하고
비좁고 상그란 가을 들길을 몇 번을 돌아서야
이윽고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양수리나 두물 마을이나
남한강과 북한강, 두 줄기 강물이 만나는 지점이라하여
그런 지명을 얻었을게 분명합니다.
두 강의 발원지는 천길 만길 떨어져 있을 것입니다.
전혀 다른 장소의 첩첩산중에 깊이 숨겨진
아주 작은 옹달샘에서 시원되었을 그 두가닥 물줄기가
험한 계곡과 바위와 험산준령을 넘고넘어
두물 마을에 까지 이르러 사이좋게 만난다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도 신비롭던지요.
바다처럼 넓은 두물 마을의 강변엔
아주 늙은 古木이 이젠 낙엽을 다 지운채로
여윈가지를 강물로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古木은 도대체 몇 백년의 성상을
그처럼 덩그런이 서서 두 줄기 강의 만남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아주 잠깐 살다가 사라지는 인생이지만
그 속에도 만남은 다반사입니다.
두 줄기 강물이 매일 두물 마을에서 만나듯이
우리도 이 인생이란 마을에서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있습니다.
늦가을의 눈부신 햇살이 반짝이는 고운 풀밭으로
뜸뜸이 다정한 연인들의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자리, 각기 다른 시각에 탄생하여
기나긴 슬픔과 아픔과 번민의 삶을 넘고 건너
어떻게 그 작은 두물 마을 古木 곁에서
그리도 다정한 만남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만남이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비롭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나 만남의 결국은 헤어짐이라 말들합니다.
이별이 없는 만남이란 애초에 없다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두 줄기 강물이 만난다는 두물 마을에서 만큼은
그 어떤 별리도 없이 오로지 만남의 모습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한 몸으로 합류하여 어디서 어떻게
헤어지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시종일관 단 하나의 강 모습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더이상 두줄기 강물이 아니라
이젠 이미 두물 마을의 강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물 마을에서처럼
당신의 강과 나의 강이 한 줄기 강으로 합쳐질 수만 있다면
거긴 그 어떤 이별도 전혀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과 나는 분명 헤어져야 하지만
당신과 내가 "우리"가 된다면
거긴 구태여 헤어짐이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둘은 헤어질 수 있지만 하나에는 헤어짐이 없습니다.
참된 만남은 둘이서 만나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두물 마을에서 하나가 된 그 강물은
저 드넓은 바다에 이르기까지
끝끝내 그렇게 하나의 모습으로 흐를 것입니다.
이 세상 온 누리가
결코 이별이 없는 진정한 만남의 강변
두물 마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重 華 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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